왜 인간은 예측할 수는 있지만, 재현할 수는 없는가

게놈 이후 세계가 가진 결정적 한계

by 민진성 mola mola

우리는 인간의 ‘설계도’를 손에 넣었다

인간 게놈 시퀀싱 프로젝트 이후, 우리는 인간의 30억 개 유전체 정보를 손에 넣었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신비한 존재가 아니다. 질병 위험도, 체질, 약물 반응, 특정 성향의 확률까지 숫자로 예측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믿기 시작했다. 인간을 충분히 많이 알면, 언젠가는 인간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 믿음에는 치명적인 착각이 하나 들어 있다.



게놈은 ‘작동하는 인간’이 아니라 ‘부품 목록’이다

게놈은 인간을 구성하는 부품들의 목록이다.

어떤 유전자가 있다

어떤 단백질을 만든다

어떤 질병과 통계적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이건 구조도일 뿐이다. 구조도는 기계가 아니다. 자동차의 부품 카탈로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엔진이 실제로 어떻게 떨리고, 열을 내고, 마모되는지 그대로 재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인간의 재료는 알게 되었지만, 인간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인간은 ‘관계의 장’ 안에서만 인간이 된다

인간은 이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유전자 → 결과

인간은 항상 다음의 곱으로 존재한다.

유전자 × 양육 × 애착 × 스트레스 × 문화 × 우연 × 관계 × 시간

인간은 단일 원인으로 설명되는 기계가 아니라, 관계와 시간 안에서 계속 변형되는 비선형 동역학계다. 인간은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누군가와, 어떤 환경과, 어떤 역사 속에서만 인간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예측은 하지만, 생성하지는 못한다

지금의 시스템은 이런 것은 잘한다.

위험군 분류

취약성 예측

평균적 반응 추정

통계적 행동 모델링

하지만 이런 것은 못한다.

한 인간이 어떤 삶의 궤적을 만들지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 구조를 형성할지

어떤 사건에 의해 어떻게 변형될지

우리는 인간을 점수화할 수는 있지만, 만들어낼 수는 없다.



데이터가 정교해질수록 인간은 더 많이 오해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측정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인간은 더 부정확하게 이해된다. 왜냐하면 시스템은 사람을 ‘관계에서 분리된 개체’로 잘라내어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항상 관계 속에서만 살아 있는 사건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인간이 실제로 살아 있는 자리 — 시간과 관계의 장이다.



이것은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 이해의 오류다

문제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인간을 ‘살아 있는 관계적 사건’이 아니라 ‘정적인 부품 묶음’으로 오해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게놈 이후의 세계는 인간을 이해하는 척하면서 인간이 실제로 살아 있는 자리 — 관계와 시간의 장을 버려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정교하게 계산하면서, 동시에 점점 더 인간을 놓치고 있다.




#생각번호202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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