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장 많이 오해하는 ‘하나님의 주권’
신앙을 조금만 오래 접하다 보면, 우리는 거의 자동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말들은 틀리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이 문장들을 곧바로 이렇게 번역해 버린다는 데 있다. “그럼 하나님은 모든 일을 직접 조종하신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주권은 ‘조종’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원격 조종하는 인형처럼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역사의 방향은 놓치지 않으신다. 통제(control)와 조종(manipulation)은 전혀 다른 말이다. 우리는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오해하면서, 신앙의 많은 질문들을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이 오해 위에서 가장 위험한 질문이 태어난다. “그렇다면 왜 인간의 악행은 그대로 벌어지는가?”
하나님은 막을 수 있음에도, 막지 않으신다
여기서 불편한 진실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악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악들은 막지 않으신다. 이건 무능이 아니라, 의도된 비개입이다. 왜일까? 우리는 흔히 신앙을 ‘문제가 없는 세계를 만드는 장치’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의 세계는 전혀 다르게 설계되어 있다. 하나님이 지금 운영하는 세계는 ‘평온한 세계’가 아니라, ‘책임이 성립하는 세계’다.
선택할 수 없는 선은, 선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이 모든 악을 사전에 차단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허용된 범위 안에서만 반응하는 존재가 된다. 그 세계에는
죄도
회개도
책임도
심판도
구원도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택할 수 없는 선은 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그냥 ‘환경에 의해 강제된 행동’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깨끗한 환경 속의 생존자’로 만들지 않으시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로 남겨 두신다.
우리는 아직 ‘정리 중인 세계’에 살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지금의 세계를 완성된 세계로 보지 않는다. 지금은 ‘정리 이전의 세계’다. 악을 제거하는 단계가 아니라, 악을 드러내고 기록하는 단계다. 그래야
심판이 정당해지고
피해가 지워지지 않으며
구원도 실제 의미를 갖는다.
이 세계는 지금도 조용히 기록되고 있다. 누가 무엇을 선택했고, 누가 누구를 어떻게 다뤘는지.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지 않으신다
우리는 자주 묻는다. “왜 하나님은 지금 당장 악을 없애지 않으시는가?” 그러나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왜 하나님은 이 세계를, 심판이 가능한 형태로 남겨 두시는가?” 하나님은 지금 세상을 ‘즉시 깨끗한 세계’로 만들고 계시지 않다. 하나님은 정리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계신다. 그래서 악은 통제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의미를 잃지 않도록 남겨진 선택의 흔적이다.
#생각번호202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