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언제든지 악해질 수 있다

질서와 저항 사이의 불편한 신앙

by 민진성 mola mola

국가는 처음부터 ‘의로운 존재’로 설정되지 않았다

우리는 쉽게 이렇게 생각한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선하다.”, “법은 정의를 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국가를 ‘선한 존재’로 전제하지 않는다. 성경이 국가에 대해 쓰는 단어는 ‘의롭다’가 아니라 ‘허락되었다’다. 허락은 관리이고, 정당성은 아니다. 국가는 언제든지 합법적 악이 될 수 있고, 정의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성경이 가장 많이 비판한 대상은 ‘권력’이다

성경에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은 개인의 죄가 아니라, 권력의 구조적 악을 향한다. 왕, 제사장, 지도자, 제국. 성경은 늘 권력을 먼저 의심한다. 왜냐하면, 권력은 가장 쉽게 정의의 언어를 빌려 폭력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복종과 의심은 동시에 요구된다

성경은 “법에 순종하라”고 말한다. 동시에 “권력을 의심하라”고도 말한다. 이 두 문장은 모순이 아니다.

질서를 위해 복종하라.

그러나 정의를 위해 감시하라.

이 신앙은 국가를 신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항상 긴장을 유지한다.



신앙이 허락하는 저항의 조건

성경은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 순간에는 불복종을 의무로 만든다.

권력이 명백한 악을 명령할 때

생명을 파괴하도록 강요할 때

정의를 거스르도록 요구할 때

그때 신앙은 말한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문장은 권력에 대한 신앙의 헌법이다.



그래서 이 신앙은 불편하다

기독교 신앙은 질서와 저항을 동시에 품는다. 무정부주의도 아니고, 전체주의도 아니다. 국가와 편안한 동맹을 맺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신앙은 항상 불편하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권력의 절대화를 막는 마지막 장치다.




#생각번호20260104

이전 10화왜 개인의 복수는 금지되고 국가는 처벌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