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질서를 갈구하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하여
존 스토트는 그의 저서 『기독교의 기본진리』에서 흥미로운 관찰을 내놓는다. 현대인들이 교회에는 적대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우회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가 말한 사랑과 희생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 가치를 담아내는 ‘그릇’인 제도적 교회에 대해서는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좋지만, 교회의 제도적인 모습은 숨이 막힌다"라고.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근원적인 질문이 피어오른다. 정말 우리가 반대하는 것이 ‘제도’ 그 자체일까? 아니면 제도가 품지 못한 ‘무언가’ 때문일까?
인간은 역설적인 존재다. 우리는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외치지만, 정작 아무런 규칙도 울타리도 없는 완전한 자유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 인간은 때로 자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다시 구속받을 곳을 찾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교회를 반대하는 이유를 단순히 ‘제도적 억압’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체계와 소속감을 원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밀어내는 것은 제도가 가진 ‘질서’가 아니라, 그 질서가 생명력을 잃고 화석처럼 굳어버린 ‘경직성’이다. 사랑이 빠진 규칙, 생명이 빠진 행정, 그리고 권위주의로 변질된 위계질서가 우리를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것이다.
교회를 향한 비판의 화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끝은 제도가 아닌 ‘사람’과 ‘태도’를 향해 있다. 사람들은 교회가 가진 배타성과 위선에 지친 것이지, 신앙의 체계 자체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당시의 낡은 종교적 제도에 균열을 내며 등장했지만, 동시에 제자 공동체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셨다. 사람들이 예수에게 우회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그분이 보여준 ‘진정성’ 때문이다. 반면 오늘날의 교회가 비판받는 지점은 그 진정성이 제도의 무게에 눌려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다. "말하는 대로 살지 않는" 위선과 "우리만 옳다"는 독선은 제도라는 껍데기를 더욱 흉측하게 만든다.
결국 문제는 ‘제도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그 제도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가이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 신념을 지켜낼 만큼 강하지 않기에, 우리에겐 여전히 서로를 붙들어 줄 공동체와 체계가 필요하다.
우리가 제도적인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나의 자유를 구속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내가 기대했던 ‘예수의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도는 본래 본질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만약 제도가 본질을 가리고 있다면, 우리가 할 일은 제도를 부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다시금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우리는 여전히 길을 찾고 있다.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는 연약함을 인정하면서도, 생동하는 사랑이 흐르는 건강한 체계 안에서 안식하기를 꿈꾼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완벽한 무질서가 아니라, 사랑이 통제하는 따뜻한 질서다.
#생각번호202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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