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무정부주의자였을까

낡은 체제를 뒤엎고 그가 세우려 했던 '사랑의 통치'에 대하여

by 민진성 mola mola

성전을 뒤엎은 혁명가, 그는 무질서를 꿈꿨나

채찍을 휘둘러 성전의 탁자를 뒤엎고, 당대 최고의 기득권층인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 일갈했던 예수. 그의 행보는 거침없었고, 기존 체제의 입장에서는 명백히 '위험한 반체제 인사'였다. 제도에 짓눌린 이들은 그에게서 무정부주의적인 해방감을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억압적인 구조를 무너뜨리고 완전한 자유를 가져다줄 파괴자로서의 예수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예수는 정말 모든 통치와 제도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였을까?



파괴가 아닌 ‘본질의 소환’

예수가 안식일의 규정을 어기고 병자를 고쳤을 때, 그는 안식일이라는 제도 자체를 폐지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묻고 있었다. "안식일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가?"

그의 혁명은 무조건적인 파괴가 아니라 ‘본질로의 회귀’였다. 제도가 인간을 보호하고 살리는 기능을 잃고, 도리어 인간을 옥죄는 수단이 되었을 때 예수는 그 껍데기를 가차 없이 깨뜨렸다. 이는 질서가 없는 혼돈(Anarchy)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제도가 담아야 할 ‘생명’이라는 알맹이를 다시 채워 넣으려는 시도였다. 그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왔다고 선언함으로써, 자신이 무정부주의자가 아닌 ‘질서의 갱신자’임을 분명히 했다.



가이사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

로마의 세금 문제로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던 이들에게 예수는 답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이 대답은 매우 절묘하다. 그는 세속 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며 무조건적인 불복종을 외치지 않았다. 다만, 국가나 제도가 신의 자리에 앉아 인간의 영혼까지 통제하려는 오만을 경계했을 뿐이다.

그는 무정부(無政府)가 아니라, ‘대안적 정부’를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다. 이 나라는 칼과 힘으로 다스리는 기존의 방식과는 정반대로 흐른다.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고, 죽음으로써 생명을 얻는 역설적인 질서다.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감당할 만큼 강하지 않기에, 예수는 우리에게 방임적 자유를 던져주는 대신 ‘사랑’이라는 더 크고 단단한 질서 속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우리가 꿈꾸는 혁명은 어떤 모습인가

오늘날 우리가 교회라는 제도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예수를 찾는 이유는, 우리 안에 ‘진정한 질서’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억압적인 제도는 싫지만, 나를 지켜줄 안전한 공동체와 가치는 필요하다는 이 모순적인 마음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예수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랑의 통치’를 가져온 통치자였다. 그가 꿈꾼 혁명은 제도를 없애는 혁명이 아니라, 제도의 주인이 ‘권력’에서 ‘사랑’으로 바뀌는 혁명이었다.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공동체가, 혹은 사회가 숨이 막힌다면 그것은 제도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그 안에 예수가 말한 ‘사랑의 질서’가 고갈되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진정한 자유는 모든 울타리를 부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책임져 줄 수 있는 사랑의 법 아래 있을 때 완성되기 때문이다.




#생각번호20260111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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