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집합이라는 테두리와 모델링의 한계선에 서서
수학에서 공집합은 기이한 존재다. 원소가 하나도 없지만, 엄연히 ‘집합’이라는 지위를 부여받는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어떤 대상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혹은 우리가 그것을 규정할 수 있든 없든, 일단 ‘인식의 주머니’에 넣는 순간 그것은 수학적 체계 안으로 편입된다는 뜻이다.
만약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원빈을 닮은 사람’이나 ‘티모시 샬라메를 닮은 사람’을 모델링했는데, 그 기준이 너무나 엄격해서 전 지구상에 단 한 명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치자. 그래도 그것은 ‘원소가 없는 집합’으로서 존재한다. 결국 내가 어떤 기준(모델)을 세우는 그 찰나에, 세상의 한 조각은 반드시 집합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것이 집합일까? 나는 여기서 ‘규정되지 않은 카오스’와 ‘규정된 코스모스’ 사이의 긴장을 본다.
집합이 되기 위해서는 ‘뚜렷이 구분할 수 있는(Well-defined)’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내가 모델링을 통해 변수를 설정하고 가중치를 부과하는 행위는, 무질서한 현실에 ‘경계선’을 긋는 작업이다. 만약 내가 아직 모델링하지 못한 것, 혹은 인간의 지성이 단 한 번도 범주화(Categorization)하지 못한 날것의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잠시 ‘집합이 아닌 상태’로 머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인지하고 “저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 그것은 내 사고의 집합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결국 이 세상에 집합이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은, 세상 모든 것이 나의 ‘인식’과 ‘모델링’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 있다는 선언과도 같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서 모든 존재는 집합적 성격을 갖는다. 그것이 물리적 실체든, 추상적 관념이든, 심지어는 ‘정의할 수 없음’이라는 속성을 가진 무언가든 말이다.
환원론적 관점: 우리는 거대한 시스템을 부분 집합들로 쪼개어 이해한다.
일반화의 관점: 개별 원소들을 묶어 하나의 집합적 법칙을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집합이 아닌 것은 설 자리가 없다. 집합이 아니라는 것은 곧 ‘이해할 수 없음’이자 ‘다룰 수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을 모델링하고 수학적으로 접근하는 이유는, 바로 그 ‘집합이 아닌 상태(무질서)’를 견디지 못하는 인간적 본능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집합마저 집합이라면, 내가 손대지 못할 영역은 없다. 설령 내 모델이 틀려 아무런 결과값을 내지 못하더라도, 나는 이미 ‘실패한 모델’이라는 이름의 집합을 하나 더 소유하게 될 뿐이다.
세상은 결국 내가 그은 수많은 테두리(Sets)의 중첩이다. 나는 오늘도 내 사고의 그물을 던져,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집합’이라는 이름의 물고기들을 건져 올린다. 집합이 아닌 것은 없다. 다만 내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혹은 내 모델링의 가중치가 0에 수렴하는 숨겨진 원소들이 있을 뿐이다.
#생각번호202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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