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링된 세계에 '순수한 추상'은 살 곳이 없다

0과 1의 그물망이 포획한 형이상학의 종말에 대하여

by 민진성 mola mola

추상은 단지 '아직 풀리지 않은 수식'일 뿐인가

나는 오랫동안 '추상(Abstraction)'이라는 단어가 주는 신비로움에 매료되어 왔다. 인간의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고, 오직 직관으로만 느낄 수 있다고 믿어온 영역들. 하지만 내가 '티모시 샬라메를 닮은 사람들의 모임'을 수학적 모델링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 신비로움은 데이터의 배열로 치환된다.

여기서 나는 근본적인 의문에 도달한다. 우리가 그동안 '추상'이라 불러왔던 것들은, 사실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적인 무엇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아직 해독하지 못한 복잡한 변수들의 집합체가 아닐까?



포획된 직관, 사라진 신비

내가 5~6개의 변수를 설정하고 가중치를 부과하여 '닮음'을 정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추상이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알고리즘이며, 명확한 경계를 가진 '집합'이다. 강화학습과 컴퓨터 비전이 인간의 눈보다 더 정확하게 사물의 특징을 포착해내는 시대에, 추상의 영토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인간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방대한 변수(Big Data)를 기계가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예전에는 '영감'이나 '통찰'이라 불렸던 영역들조차 이제는 '패턴 인식'이라는 차가운 용어로 대체된다. 내가 모델링에 성공했다는 것은, 곧 내가 그 대상을 온전히 통제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추상이 가졌던 모호한 아름다움은 증발하고 만다.



온전한 추상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이 세상에 온전한 추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걸까? 나의 결론은 이렇다. 우리가 모델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구체'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울'이라는 추상을 뇌내 신경전달물질의 농도와 활동 전위의 모델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우울은 더 이상 시적인 추상이 아니라 생물학적 수치가 된다. 결국 '온전한 추상'이란 인간의 지성이 아직 닿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붙여진 임시 이름'일지도 모른다.



모델링 너머의 세계를 꿈꾸며

나는 오늘도 세상을 모델링한다. 모호한 것들을 집합으로 만들고, 흩어진 데이터에서 일반화된 법칙을 찾아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나의 모델링이 실패하는 지점을 기다리기도 한다.

어떤 수식으로도 설명되지 않고, 어떤 알고리즘으로도 집합화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예외.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정교한 모델링의 시대에 마지막으로 남은 '진짜 추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이성적 확신은 속삭인다. "결국 그것도 변수가 부족할 뿐, 언젠가는 나의 모델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각번호20260113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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