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고 있던 생물학적 환경론
나는 그동안 '환경'을 너무 거대하게만 생각해왔던 것 같다. 내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어떤 동네에서 자랐는지 같은 사회적 요인들이 나를 만든다고 믿었다. 하지만 태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환경은 훨씬 더 가깝고 구체적이다. 임신 상태의 태아에게 산모는 외부 세계 그 자체다. 산모의 호흡, 산모가 섭취하는 영양분, 심지어 산모가 느끼는 감정에 따른 호르몬의 변화까지도 태아에게는 피할 수 없는 ‘기상 조건’이자 ‘생존 환경’이 된다.
우리는 흔히 게놈(Genome)이 생명체의 설계도라고 말하지만, 그 설계도가 펼쳐지는 첫 번째 현장은 사회가 아니라 산모의 신체다. 산모가 섭취한 음식물은 단순히 영양 공급을 넘어 태아의 유전자 발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생물학적 환경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내가 앞서 고민했던 ‘게놈 결정론’에 대한 중요한 반격이 된다. 게놈이 아무리 훌륭해도, 최초의 환경인 자궁 안에서 어떤 생물학적 신호를 받느냐에 따라 그 잠재력의 방향은 완전히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면 생애 전반의 궤적을 논할 때, 너무 늦은 시점(사회화 이후)부터 분석을 시작했던 것은 아닐까.
왜 우리는 사회적 환경 요인에만 그토록 집착해왔을까? 아마도 사회적 환경은 우리가 정책이나 교육을 통해 ‘수정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산모와 태아 사이의 그 밀폐된 생물학적 상호작용은 너무나 은밀하고 복잡해서 모델링하기가 까다로웠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이제 그 은밀한 영역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임신 중 산모의 스트레스 수치나 영양 상태가 아이의 평생 건강뿐만 아니라 성격과 지능의 기초 모델을 형성한다는 연구들은, 우리가 그동안 환경이라는 집합에서 가장 중요한 원소 하나를 빠뜨리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제 나의 모델링 안에서 환경은 더 이상 평면적이지 않다. 그것은 겹겹이 쌓인 층층의 구조다. 가장 안쪽에는 산모라는 ‘생물학적 우주’가 있고, 그 위를 가족과 사회라는 ‘심리적·문화적 우주’가 덮고 있다.
나는 이제 생명을 추론할 때 게놈이라는 설계도만 보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가 자라난 사회적 배경만 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 10개월 동안 머물렀던 그 밀도 높은 생물학적 환경이 그의 기초 가중치(w)를 어떻게 설정해 놓았을지 질문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 늦게 환경을 논하기 시작했다. 진짜 환경은 우리가 이름을 갖기도 전, 누군가의 숨결과 체온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생각번호202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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