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교육은 환경을 외면하는가
영아발달 교과서의 문장은 명확하다. 환경을 모르면 인간을 이해할 수 없고, 가능성 또한 발달시킬 수 없다고. 이것은 심리학과 뇌과학이 증명한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공교육의 현장은 이 진리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개인이 처한 맥락과 환경을 고려하기보다는, 동일한 환경(교실)에 가두고 동일한 결과(성적)를 산출해내는 데 몰두한다. 이 괴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공교육은 기본적으로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다. 대량의 인적 자원을 저렴하고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설계된 이 시스템에서 '개별 환경의 고려'는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드는 사치로 치부된다. 수십 명의 학생이 모인 교실에서 각자의 가정환경, 정서적 배경, 타고난 기질을 분석하고 최적화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행정적 비효율'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인간의 가능성을 최대화하기보다, 평균치에 수렴하는 '관리 가능한 노동력'을 만드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공교육이 환경적 요인을 외면하는 명분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형평성'이다. 모두에게 똑같은 시험지, 똑같은 교과서를 주는 것이 공정하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이는 각기 다른 출발선에 선 아이들에게 똑같은 신발을 신기고 달리기 시합을 시키는 것과 같다. 환경적 맥락을 거세한 채 결과만을 비교하는 방식은, 사실상 환경이 열악한 아이들의 가능성을 시스템적으로 배제하는 행위다. 교과서가 말하는 '최대의 발달'은 개별적이지만, 공교육이 추구하는 '평가'는 집단적이다.
학교라는 시스템은 담장 밖의 환경적 변수(가정, 지역사회, 경제적 배경)를 통제할 능력이 없다. 교과서에는 그 변수가 중요하다고 적혀 있지만, 교육 행정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교육 과정에서 소외시킨다. 좁은 교실 안에서 다룰 수 있는 변수(진도, 출석, 시험)에만 집중하는 것이 관리자들에게는 훨씬 안락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사라지고, 오직 평가 지표로서의 인간만이 남게 된다.
공교육이 교과서의 방향대로 나아가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교육 기관이라기보다 '분류 기관'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서열을 매기는 것이 목적이 된 순간부터 환경적 맥락에 대한 이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우리가 앞서 이야기했듯,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외면한 나의 '환경적 요인'을 스스로 인식하고 보완해야 한다. 공교육이 나의 가능성을 최대로 도와주지 않는다면, 나는 내 환경을 객관화하여 스스로를 교육할 수 있는 주권을 되찾아와야 한다. 교과서의 진리는 학교가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우리 삶 속에서 우리가 직접 실천해야 할 '인간에 대한 예의'인 셈이다.
#생각번호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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