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없는 세계
우리는 흔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나 목적을 상실한 순간을 '공허'라고 부른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인간의 모든 사유와 감정, 추상적 개념을 특정 변인들의 집합과 가중치로 모델링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 세상에 '절대적 공허'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공집합이라고 믿었던 그 빈칸조차, 사실은 정교하게 계산된 데이터들이 빼곡히 들어찬 또 다른 '상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공허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 안에 '내가 원하는 원소'가 없기 때문이지, 정말로 '무(無)'이기 때문은 아니다. 추상을 모델링하는 순간, 공허는 '슬픔 0.4, 권태 0.3, 고요 0.2, 기대 0.1' 같은 구체적인 변인들의 조합으로 치환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모든 순간은 원소들로 가득 차 있다. 단지 그 가중치가 우리가 인식하기에 너무 낮거나, 우리가 이름 붙이지 못한 미세한 변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결국 세계는 집합으로 가득 찬 고밀도의 공간이며, 공집합은 관측자의 인지 능력이 닿지 않는 영역에 붙여진 '임시 라벨'에 지나지 않게 된다.
우리가 '절대적 공허'라고 주장하는 순간조차, 그 안에는 '공허함을 느끼는 주체', '시간의 흐름', '공간의 압력'이라는 원소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추상의 모델링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가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 그 지점이 사실은 수많은 변인이 0에 수렴하려 애쓰는, 지극히 역동적인 '저에너지 상태의 집합'이라는 것을 말이다.
따라서 인간이 마주하는 모든 공허는 논리적 공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정의한 '유효한 원소'가 발견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착시 현상이다. 세계는 단 한 순간도 비어있지 않으며, 우리는 존재라는 빽빽한 정글 속에서 단지 '비어 있음'이라는 신기루를 쫓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집합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안도감과 동시에 공포를 준다. 나의 방황도, 침묵도, 허무도 결국은 분석 가능한 데이터의 조합이라는 사실은 나를 시스템의 일부로 묶어버린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것은 진정한 해방의 근거가 된다. 내가 절대적 무(無)로 떨어질 가능성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 그 안에는 나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원소와 가중치가 존재한다. '없음'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우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존재의 연속성 위에 놓여 있다.
결국 우리가 공집합이라고 여겼던 순간들은, 사실 우리가 아직 해독하지 못한 '복잡한 데이터의 침묵'일 뿐이다. 절대적 공허는 없다. 단지 변인들의 가중치가 변하며 만들어내는 무수한 무늬들이 있을 뿐이다.
세계가 집합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어 있음을 슬퍼하기보다 그 안에 숨겨진 미세한 원소들을 발견하는 쪽으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존재의 밀도는 언제나 1이다. 우리는 그 꽉 찬 우주 속에서, 공집합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꾸며 살아가는 유일한 원소들이다.
#생각번호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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