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은 도덕적 고통보다 저열한 쾌락을 택하는가
도덕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해야 하고(자기객관화), 타인의 맥락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며, 자신의 본능적인 이기심을 억제해야 한다. 반면 혐오는 매우 쉽다. 복잡한 사고 과정을 생략하고 타자를 '악'으로 규정하는 순간, 나는 즉각적으로 '선'의 위치에 서게 된다. 인간이 혐오를 선택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적은 노력으로 최대의 심리적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도덕적 성취는 오랜 인내 끝에 오지만, 혐오는 배설하는 즉시 쾌감을 준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깎아내릴 때 우리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출된다. 특히 풍요의 시대에 자아존중감이 결여된 개인들에게 혐오는 '가장 값싼 자존감 회복제'다.
내가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남을 나쁜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상대적인 우월감을 얻는 것. 이것은 지극히 비겁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매우 효율적인(Low-cost, High-return) 전략이다. 혐오는 도덕적 성찰이 줄 수 없는 즉각적인 '승리감'을 위조해 준다.
혐오는 강력한 '우리'를 형성한다. 공동의 적을 설정하고 함께 돌을 던질 때, 인간은 강력한 소속감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도덕적 책임은 집단 뒤로 숨는다. 혼자서는 차마 하지 못할 잔인한 말들도 '우리'라는 이름으로 행할 때는 정의로운 행동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보나롤라의 추종자들이 피렌체의 예술품을 불태우며 환호했던 이유는 그것이 '신성한 의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혐오는 집단의 논리를 빌려 개인의 가책을 마비시키고, 파괴적 본능에 정당한 명분을 부여한다.
우리가 앞서 말했듯, 현대 사회는 너무 복잡하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환경, 상처, 변인들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혐오는 이 모든 복잡성을 단칼에 잘라낸다. "그는 ~하기 때문에 나쁘다"는 단정은 뇌의 에너지를 아껴준다.
도덕은 인간을 '입체적인 집합'으로 보려는 의지이지만, 혐오는 인간을 '단 하나의 원소(낙인)'로 환원하는 폭력이다. 지적으로 게으른 인간일수록, 복잡한 도덕적 사유보다 단순한 혐오의 논리에 더 쉽게 매료된다.
결국 혐오를 선택하는 것은 본능에 굴복하는 노예의 길이다. 반면 도덕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는 주권자의 길이다.
우리가 돈이 많아도 고통스러운 운동을 선택하는 사람을 '진정한 상류층'이라 불렀던 것처럼, 혐오하기 쉬운 상황에서도 도덕적 성찰을 선택하는 사람이야말로 정신적인 최상위 계급이다. 혐오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도덕은 오직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귀한 사치이기 때문이다.
#생각번호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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