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가 낳은 새로운 야만
15세기 피렌체가 사보나롤라의 불꽃을 불러냈듯, 21세기 현대 사회는 기술적·물질적 정점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례없는 혐오와 분열,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우리가 풍요를 다스릴 '철학적 근육'을 키우기도 전에 너무 많은 자유와 정보를 손에 쥐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과거의 인간은 주어진 환경(가족, 종교, 계급)에 따라 살아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현대인은 매 순간 자신을 정의해야 하는 '주체성의 형벌'을 선고받았다. 이 막막한 자유 속에서 인간은 불안을 느낀다.
사람들은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억압'을 찾는다. 다만 현대의 사보나롤라는 종교가 아니라 '알고리즘'과 '극단적 커뮤니티'의 형태로 나타난다.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해 주는 극단적인 논리에 자신을 의탁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고통에서 도피하는 것이다. 이것은 풍요가 만든 '지적 나태'이자 새로운 형태의 예속이다.
물질적 풍요가 상향 평준화되자, 인간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가상의 결핍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SNS는 타인의 가장 화려한 순간만을 편집해 보여줌으로써, 충분히 풍요로운 이들에게조차 "너는 아직 부족하다"는 가짜 욕구를 주입한다.
우리가 앞서 이야기했듯, 결핍은 욕구를 만들고 욕구는 편향을 만든다. 현대 사회의 혼란은 실제 배가 고파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조작된 결핍'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소음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빵을 위해 싸우지 않고, '누가 더 불행한가' 혹은 '누가 더 도덕적으로 우월한가'를 두고 싸운다.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흔해진다. 정보도, 물건도, 심지어 인간관계도 흔해진다. 가치가 하락한(인플레이션) 세상에서 인간은 자극적인 것에서만 살아있음을 느낀다.
사보나롤라가 피렌체 인민들에게 '죄악의 소각'이라는 자극적인 이벤트를 제공했듯, 현대의 대중은 타인을 향한 '공개 처형(Cancel Culture)'이나 혐오 발언을 통해 배설적인 쾌감을 얻는다. 이는 풍요가 준 권태를 견디지 못한 인간들이 벌이는 가장 저열한 형태의 유희다.
결국 현대 사회의 혼란은 우리가 풍요를 즐길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거대한 증거다. 풍요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그 자유를 채울 '내면의 질서'는 주지 않았다.
사보나롤라 같은 선동가나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발적인 억압(Self-Discipline)'을 부과해야 한다. 남이 그어준 선이 아니라 내가 설계한 논리와 도덕으로 나의 삶을 규율하는 것. 그것만이 이 과잉의 시대에 멀미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항해술이다.
#생각번호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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