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의 홍수

욕망이라는 이름의 댐을 짓다

by 민진성 mola mola

우리는 흔히 배가 고파서 밥을 짓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욕망이 먼저 있고, 경제는 그 뒤를 충실히 따르는 서비스라고 믿는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의 거대한 매커니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주 기이한 역전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은 넘쳐나는 생산량을 감당하지 못해, 그 쓰레기더미를 처리해 줄 욕망을 인위적으로 '제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산이라는 괴물이 먼저 태어났다

역사상 존재했던 그 어떤 체제도 자본주의만큼 폭발적인 생산력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증기기관에서 시작해 자동화 공정, 이제는 AI에 이르기까지 기계는 쉬지 않고 물건을 뱉어낸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공장은 멈추는 순간 막대한 손실을 입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필요는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공급이 수요를 압도적으로 앞질러버린 상황. 이제 자본은 생존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다. 물건을 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욕망을 더 키울 것인가? 자본주의는 주저 없이 후자를 택했다.



욕망은 생산의 하수인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 '욕망의 조작'이 시작된다. 공급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산더미 같은 물건을 소비자의 거실로 옮기기 위해 거대한 심리적 수로를 팠다.

과거의 체제들, 예컨대 중세나 공산주의가 욕망의 무한함을 논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에게는 그 욕망을 감당할 '생산력'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배고픈 시절에는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 오히려 폭동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달랐다. 창고에 쌓인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우리에게 "당신은 아직 부족하다"는 가짜 신호를 쉼 없이 보내야만 했다. 우리가 느끼는 '무한한 욕망'은 사실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지 않게 하려는 시스템의 비명에 가깝다.



소비자가 아닌 '재고 처리반'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소비자라고 부르지만, 냉정하게 보면 시스템의 과잉 생산을 몸으로 막아내는 '재고 처리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느껴지는 조바심,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은 모두 생산자가 쳐놓은 그물이다. 그들은 외주 기획사와 광고 대행사를 동원해 우리의 무의식을 해킹하고, 그곳에 '무한'이라는 단어를 심어놓았다. 생산량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만큼 더 크고 깊은 욕망이 필요해진다. 공급의 홍수가 거세질수록 우리 마음의 댐은 더 높게 쌓여야만 하는 것이다.



거꾸로 선 세계를 바로 보기

결국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는 경제학의 대전제는 인과관계가 뒤바뀐 가설이다. "시스템의 생산량이 무한해지려 하기에, 인간의 욕망도 그에 맞춰 무한해져야만 한다"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깝다.

우리가 이 거꾸로 선 세계를 바로 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더 많이'라는 명령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의 갈증이 진정한 나의 것인지, 아니면 과잉 생산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수혈된 가짜 열망인지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생각번호20260114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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