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결핍을 '본능'이라 믿게 되었나
경제학 강의실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는 명제 앞에 잠시 멈춰 서 본다. 만약 이 문장이 시대를 초월한 진리라면, 우리 조상들도 우리만큼이나 끊임없는 갈증 속에서 괴로워했을까? 역사의 페이지를 넘겨보면 뜻밖의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이 이토록 거대한 욕망의 굴레를 쓰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도래하기 전, 인류의 오랜 스승들은 욕망을 '무한한 본성'이 아닌 '다스려야 할 병'으로 취급했다. 중세 유럽의 교회는 탐욕을 영혼을 좀먹는 7대 죄악 중 하나로 규정했고, 동양의 선비들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그 시절의 경제는 성장이 아닌 '유지'를 목적으로 했다. 내가 남보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은 누군가의 몫을 뺏는 비도덕적인 행위였고, '충분함'의 기준은 공동체의 관습에 의해 엄격히 정해져 있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지금처럼 매 시즌 새로운 옷을 사고 싶어 하는 욕망을 보여준다면, 그들은 그것을 인간의 본능이라 부르는 대신 '치료가 필요한 광기'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현대 경제학은 이토록 욕망의 무한성을 강조하게 된 것일까. 답은 체제의 생존에 있다. 자본주의는 팽창을 멈추는 순간 붕괴하는 자전거와 같다. 공장이 멈추지 않으려면 소비가 멈추지 않아야 하고, 소비가 멈추지 않으려면 우리의 만족감이 결코 채워져서는 안 된다.
반면,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서려 했던 공산주의는 욕망을 구조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들은 인간의 필요를 계산하고 분배하면 '가짜 욕망'이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의 원초적 소유욕을 간과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는 그 원초적 소유욕을 억누르는 대신, 그것을 시스템의 엔진으로 삼는 영리함을 발휘했다. "당신의 욕망은 정당하며, 심지어 무한하다"고 속삭이며 말이다.
결국 '무한한 욕망'은 발견된 것이 아니라 발명된 것에 가깝다. 자본주의 이전의 시대가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했다면, 자본주의는 욕망을 '증폭'시킴으로써 번영을 설계했다. 우리가 느끼는 끝없는 갈증은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 아니라, 매일 아침 우리가 눈을 뜨는 순간부터 마주하는 광고, 알고리즘, 그리고 성장을 지상 과제로 삼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문화적 설정값'이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욕망 유도 장치' 안에서 살고 있다. 공급자들은 외주 업체들의 심리학적 통찰을 빌려 우리의 뇌에 끊임없이 결핍의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신호를 나의 본능이라 착각하며 지갑을 연다.
역사를 돌아보며 얻는 위안은, 인간이 지금과는 다르게 생각했던 시절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나의 욕망이 본능이 아니라 '구조적 산물'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선택권을 갖게 된다.
시스템이 파놓은 '무한함'이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댈 것인가, 아니면 내 삶의 '충분함'을 스스로 정의할 것인가. 무한한 욕망의 시대에 우리가 되찾아야 할 가장 혁명적인 능력은, 어쩌면 "이만하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생각번호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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