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이 아닌 구조의 문제
경제학은 언제나 인간의 욕망을 ‘무한하다’고 단정 지으며 논의를 시작한다. 마치 인간이라면 태생적으로 채울 수 없는 구멍을 가슴에 하나씩 뚫고 태어난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 전제를 뒤집어보고 싶다. 정말 우리의 욕망은 밑도 끝도 없이 거대한 것일까, 아니면 이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 우리의 욕망이 반드시 무한해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이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는 지독할 정도로 ‘성장’에 중독되어 있다. 기업은 작년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야 하고, 국가는 매년 플러스 성장을 기록해야 한다. 만약 전 세계 사람들이 어느 날 동시에 “나는 지금 충분히 행복해, 더 이상 살 물건이 없어”라고 선언하며 소비를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우리가 아는 현대 문명은 그날로 파산할 것이다.
결국, 시스템은 생존을 위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결핍’을 주입해야만 한다. 무한한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시스템이 멈추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강요한 ‘필수 사양’인 셈이다. 우리가 만족하는 순간, 기계는 멈추기 때문이다.
공급자들은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것을 넘어, 우리의 멀쩡한 일상을 ‘부족한 상태’로 재정의하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쓴다. 마케팅 전문가와 데이터 분석가들로 이루어진 ‘욕망 설계자’들은 외주를 받아서라도 우리의 뇌 속에 새로운 수로를 판다.
어제까지는 아무 불편함 없던 스마트폰이 카메라 렌즈의 개수가 적다는 이유로 갑자기 부끄러운 물건이 된다. 아직 충분히 입을 수 있는 옷들이 ‘올해의 컬러’가 아니라는 이유로 의류 수거함으로 향한다. 이것은 나의 자발적 욕망인가, 아니면 “지금의 너는 충분하지 않다”고 속삭이는 정교한 가스라이팅의 결과인가.
우리는 흔히 과소비와 탐욕을 개인의 도덕적 해이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만족을 모르는 인간을 비난하기 전에, 만족하는 순간 재앙이 닥치도록 설계된 이 구조를 먼저 보아야 한다. 사회는 우리에게 ‘무한한 욕망’이라는 엔진을 장착해주고는, 그 엔진이 뜨겁게 달궈질수록 우리를 우수한 소비자라고 치켜세운다.
나는 이제 경제학의 첫 장을 다시 써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은 시스템의 유지를 위해 무한하도록 관리되고 있다”고 말이다.
이 거대한 유도 시스템 안에서 내 안의 진짜 목소리를 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 욕망의 근원이 내가 아닌 ‘공급자의 기획’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잠시 노를 멈추고 숨을 고를 수 있다.
무한한 욕망의 파도에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 내가 오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것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나에게 원하도록 시킨 것인가?”
#생각번호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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