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자의 천국

신의 용서는 사회적 악을 덮을 수 있는가

by 민진성 mola mola

현대 사회의 고통은 2천 년 전과 그 규모와 결이 다르다. 과거의 잘못이 개인 간의 갈등이었다면, 현대의 잘못은 시스템과 의사결정의 문제다. 한 명의 통치자, 혹은 거대 기업의 결정권자가 내린 선택은 수천만 명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심각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다수에게 거대한 악을 행한 책임자가 단지 신 앞에서 회개했다는 이유로 구원을 얻는다면, 그 시스템은 과연 정의로운가.



'값싼 은혜'라는 비극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이를 '값싼 은혜'라고 비판했다. 스스로의 삶에서 책임져야 할 대가는 치르지 않은 채, 신의 용서 뒤로 숨어버리는 행위다. 현대적 딜레마 속에서 수많은 이에게 고통을 준 책임자가 "나는 신께 용서받았으니 이제 평안하다"고 말하는 순간, 종교는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의 도구가 된다. 만약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구원이 그런 식의 심리적 해방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거대 악을 방조하고 정당화하는 '반사회적 도그마'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구원과 책임의 분리 불가능성

그리스도교의 본래 논리는 사실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진정한 회개는 단순히 말로 하는 사과가 아니라, '돌이킴(Metanoia)'을 의미한다. 자신의 선택으로 악을 행했다면, 그 결과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책임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경 속 삭개오라는 인물이 자신의 부정축재를 회개하며 재산의 절반을 내놓고 네 배로 갚겠다고 했던 것처럼, 신의 용서는 사회적 책임으로부터의 면제가 아니라 오히려 '더 처절한 책임'으로의 초대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종교는 종종 이 고통스러운 책임의 과정을 생략한 채 '용서'라는 결과값만 복제해낸다.



선의가 낳은 악, 그리고 신의 침묵

책임자가 정말 선의를 가지고 내린 결정이 결과적으로 다수에게 악이 되었을 때, 그 고뇌는 더 깊어진다. 현대인은 이 거대한 딜레마 앞에서 예수가 말한 원론적인 사랑만으로는 답을 내릴 수 없다. 수억 명의 운명이 걸린 상황에서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내밀라'는 식의 가르침은 무책임한 방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이 현대적 딜레마에 대해 새로운 업데이트를 해주지 않는 이상, 책임자는 신의 침묵 속에서 오직 자신의 이성과 고독한 결단으로 그 무게를 감당해야만 한다.



신의 구원보다 앞선 인간의 공의

무교의 시선에서 볼 때, 이런 책임자에게 필요한 것은 신의 용서가 아니라 '역사와 피해자들의 심판'이다. 설령 신이 그를 용서한다 할지라도, 그 용서가 지상에서의 처벌과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만약 구원이 지상의 정의를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라 거대한 도피처일 뿐이다. 진정한 구원 서사가 유효하려면, 그것은 가해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장치가 아니라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내고 뒤틀린 질서를 바로잡는 '정의의 회복'이어야만 한다.




#생각번호20260116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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