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오독하는 이유
수학에서 집합은 조건에 의해 원소가 결정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그 인과관계의 선후를 뒤집어 마주한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숨겨놓은 '조건제시법(Back-end)'은 결코 우리 눈에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매일 아침 눈앞에 쏟아지는 수만 가지의 사건과 사람이라는 '원소나열법(Front-end)'을 목격할 뿐이다. 그리고 이 불완전한 나열을 통해 저 너머의 진실을 추측하며 각자의 기준을 세운다.
현실의 원소들은 수학 문제처럼 정갈하게 나열되지 않는다. 너무나 복잡하고 방대하며, 때로는 모순적으로 섞여 있다. 우리는 나열된 원소들 ${A, B, C, \dots}$를 보고 "아, 이 집합의 조건은 $X$겠구나"라고 판단하지만, 사실 그 배후의 진짜 조건은 $Y$일 수도 있다.
원소가 많아질수록, 그리고 복잡해질수록 우리가 세운 가설(조건제시법)이 틀릴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우리는 진실이라는 백엔드 소스코드를 보지 못한 채, 프론트엔드에 화면이 출력되는 방식만 보고 "세상은 이런 곳이야"라고 단정 짓는 치명적인 오류 속에 살고 있다.
질문자의 통찰처럼,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전체 집합의 진실'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원소를 관찰하기엔 우리의 인지 능력이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부분집합'을 만든다.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믿고 싶은 기준(조건제시법)에 부합하는 원소들만 필터링하여 나만의 작은 집합을 구축한다. 정치적 성향, 가치관, 취향이라는 이름의 필터는 거대한 세상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들만 골라 나열해준다. 이제 진실은 '객관적인 전체'가 아니라 '내 눈앞에 나열된 부분'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각자가 가진 이 파편화된 집합들이 개별적으로는 모두 '참'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선택한 조건제시법에 따라 필터링 된 원소들이 내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전체 집합의 극히 일부'라는 사실을 망각할 때 발생한다. 각자의 주머니 속에 든 구슬들이 참이라고 해서, 그 구슬들이 전체 우주의 색깔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가진 부분집합이 곧 세상의 전체 집합인 줄 착각하며, 다른 조건제시법을 가진 타인과 충돌한다. 서로의 프론트엔드 화면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거짓'이라 비난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세상의 진짜 백엔드(조건제시법)를 다 읽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언제나 편집된 프론트엔드이며, 우리가 세운 기준은 늘 오류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보고 있는 나열이 전체가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타인이 보여주는 생경한 원소나열법을 보며 "저 사람의 백엔드에는 어떤 조건이 있길래 저런 화면이 출력될까"를 궁금해하는 태도 말이다. 진실은 어쩌면 하나의 고정된 조건제시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각자 가진 수많은 부분집합을 이어 붙여 거대한 지도를 완성해나가는 그 지난한 과정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번호202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