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진실이라 믿는 '샘플링'의 함정
우리는 흔히 내가 이성적인 판단(조건제시법)을 내리고 그에 맞는 삶의 방식(원소)을 선택하며 산다고 믿는다. 하지만 차가운 진실은 그 반대편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선택한 적이 없다. 단지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알고리즘이 쏟아낸 특정한 원소들에 압도당했을 뿐이다. 반복적으로 노출된 원소들이 뇌에 각인되면, 인간은 그 나열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후적으로 '조건'을 급조한다. 즉, 진실이 조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출량이 진실을 연기한다.
수학적 정의라면 조건이 원소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론에서 조건은 '경험의 요약'일 뿐이다. 매일 같은 부류의 사람들, 같은 편향의 뉴스, 같은 가치관의 영상(원소)에 노출된 개인은 그것이 '세상의 보편적 속성'이라고 믿어버린다.
결국 우리가 세운 숭고한 가치관이나 조건제시법은 사실 '내가 본 샘플들의 평균치'에 불과하다. 우리는 전체 집합의 백엔드를 해독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나에게 많이 노출된 프론트엔드의 화면을 우주의 법칙이라 착각하며 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자신이 부분집합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오만이다. 내가 가진 집합이 전체라고 믿는 순간, 내 울타리 밖에 있는 모든 원소는 '오류'나 '악'이 된다.
내가 가진 조건제시법에 부합하지 않는 타인의 삶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전체 집합의 또 다른 풍경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틀렸다"고 규정해버린다. 인식이 좁아질수록 내가 가진 부분집합은 견고한 성벽이 되고, 그 성벽 밖의 거대한 여집합은 보이지 않는 유령 취급을 받는다.
질문자의 말대로, 인지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두 사람이 만나면 비극이 시작된다. 나는 나의 부분집합 A가 진리라고 믿고, 상대는 자신의 부분집합 B가 진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슬프게도 A와 B 사이에는 교집합이 거의 없다.
나는 상대의 세상(여집합) 안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파편일 뿐이고, 상대 역시 나의 세상 밖(여집합)에 존재하는 의미 없는 점일 뿐이다. 우리는 서로의 여집합에 속한 부분집합으로서, 서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평행우주를 살아간다. 진실은 두 집합의 합집합 어딘가에 있겠지만, 누구도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합집합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여집합의 전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지금 내 눈앞에 나열된 원소들이 사실은 누군가(환경, 알고리즘, 우연)에 의해 의도적으로 샘플링된 결과물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조건제시법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내가 처한 환경의 산물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성벽 너머를 궁금해할 수 있다. "나의 여집합에는 무엇이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비로소 부분집합의 노예에서 벗어나 전체 집합의 진실을 향해 아주 작은 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생각번호202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