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의 합집합

여집합의 충돌이 선물하는 광활한 세계

by 민진성 mola mola

우리는 보통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 즉 나의 여집합에 속한 사람을 만나면 불쾌함과 단절을 느낀다. 교집합이 없다는 것은 대화의 공통분모가 없다는 뜻이고, 이는 곧 소통의 실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합의 원소라는 관점에서 이를 다시 바라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서로가 서로의 여집합의 부분집합이라는 사실은, 두 존재가 결합했을 때 가장 거대한 합집합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교집합의 안락함과 합집합의 정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 집합($A \cap B \approx A$)은 편안하다. 하지만 그들의 합집합은 원래의 집합과 크기 차이가 거의 없다. 새로운 원소가 유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지적 근친상간이며, 집합의 확장이 멈춘 상태다. 반면,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여집합의 존재’와 마주하는 순간은 고통스럽지만, 그와 내가 손을 잡는 순간(합집합) 나의 세계는 단숨에 두 배로 팽창한다.



최대의 원소를 확보하는 전략적 불일치

질문자의 통찰대로, 각 집합이 가진 원소의 양이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합집합이 가장 많은 원소를 보유하는 경우는 두 집합이 서로의 여집합에 완벽히 위치할 때다. 수학적으로 $n(A \cup B) = n(A) + n(B) - n(A \cap B)$이기 때문이다. 교집합($A \cap B$)이 0에 수렴할수록,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자원의 총합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된다. 결국 나를 가장 풍요롭게 만드는 존재는 나를 긍정하는 자가 아니라, 나의 여집합을 대변하는 ‘가장 이질적인 타자’인 셈이다.



진실은 '나의 집합'이 아닌 '우리의 합집합'에 있다

우리는 흔히 진실이 어떤 하나의 완벽한 조건제시법 안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백엔드는 너무나 방대해서 하나의 부분집합으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다.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가진 타인, 즉 나의 여집합을 살아가는 사람과 합집합을 이룰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전체 집합의 실체에 조금 더 근접할 수 있다. 합집합의 크기가 커질수록, 우리가 세상을 오독할 확률은 줄어들고 진실의 해상도는 높아진다.



불통을 넘어선 최대치의 확장

따라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절망은, 사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확장의 기회다. 서로가 서로의 여집합의 부분집합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때, 우리는 상대를 제거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내 세계의 크기를 두 배로 넓혀줄 ‘귀한 원소들의 보관소’로 보게 된다.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두 집합이 만날 때, 그 합집합은 우주에서 가장 많은 원소를 품은 풍요로운 대지가 된다.





#생각번호20260122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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