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집합이라는 공통분모

우리가 결코 남이 될 수 없는 이유

by 민진성 mola mola

우리는 흔히 서로의 차이점에 집중한다. 내가 가진 원소와 네가 가진 원소가 얼마나 다른지, 우리의 교집합이 얼마나 희박한지를 따지며 서로를 '여집합'이라는 타자로 규정한다. 하지만 집합의 세계에는 이 모든 개별성을 뛰어넘는 기묘하고도 절대적인 규칙이 하나 있다. 바로 '공집합(∅)은 모든 집합의 부분집합'이라는 명제다. 우리가 아무리 다르고, 단 하나의 교집합 원소조차 갖지 못한 평행우주를 살고 있다 해도, 우리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무엇'을 공유하고 있다.



비어 있음으로써 공유되는 본질

공집합은 원소가 하나도 없는 집합이다. 너무나 미미해서 무시하기 쉽지만, 수학은 이를 모든 집합이 기본적으로 품고 있어야 할 씨앗으로 규정한다. 인간으로 치면, 이는 우리가 가진 지위, 재산, 가치관, 성격이라는 '원소'들을 모두 덜어냈을 때 남는 가장 순수한 실존적 빈자리와 같다. 우리는 저마다 화려하거나 투박한 원소들로 자신을 채우고 살아가지만, 그 밑바닥에는 '태어남'과 '죽음', 그리고 '존재함'이라는 비어 있는 본질이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다.



교집합이 0인 곳에서 피어나는 연대

설령 두 사람의 삶이 극단적으로 달라서 공유할 수 있는 경험(원소)이 단 하나도 없다고 가정해보자. 세상을 보는 눈도, 사용하는 언어도, 지향하는 가치도 다르다. 하지만 그 두 집합을 깊숙이 파고들면 결국 동일한 '공집합'이라는 지점에 도달한다.

우리는 서로의 원소를 이해할 수는 없어도, 서로가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비어 있는 불안'과 '존재의 고독'은 이해할 수 있다. 공집합은 우리가 서로를 '나와 같은 존재'라고 부를 수 있게 만드는 최후의 보루이자, 가장 낮은 곳에서 흐르는 거대한 강물이다.



본질적인 속성은 지워지지 않는다

본질적인 속성은 결코 지울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서로를 밀어내고 여집합의 경계를 높이 쌓아도, 내 안의 공집합이 당신 안의 공집합과 같은 모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타인을 대할 때 가져야 할 가장 근본적인 예의를 시사한다. 상대의 원소나열법이 내 마음에 들지 않고, 그의 조건제시법이 나의 가치관을 위협하더라도, 그의 밑바닥에 나와 같은 '공집합의 실존'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거기서부터 비로소 진정한 존중이 시작된다.



무(無)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대화

결국 우리는 공집합이라는 텅 빈 도화지를 공유한 채, 그 위에 각자의 인생이라는 원소를 그려 넣는 화가들이다. 그림의 풍경은 제각각이라 서로 이해하기 힘들지라도, 우리가 같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하다.

우리가 서로의 다름(여집합) 때문에 절망할 때, 잠시 원소들을 치워내고 그 밑의 공집합을 바라보아야 한다. 아무것도 없기에 무엇이든 시작될 수 있는 그 비어있는 공간에서, 우리는 비로소 '다름'을 이겨내는 '같음'의 기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생각번호20260122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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