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자본의 데이터 폭포 아래

홀로 선 과학자의 '해석'

by 민진성 mola mola

생물학(Biology)과 정보학(Informatics)의 만남. 이름만 들어도 세련된 이 학문의 현장에 서 있으면, 마치 디지털로 생명의 비밀을 해킹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모니터 너머의 화려한 단백질 구조와 유전체 지도 뒤에는, 개별 과학자가 마주해야 하는 차갑고 높은 벽이 존재한다.



데이터, 그 거대한 권력의 사유화

생물정보학의 원재료는 ‘데이터’다. 그러나 이 데이터를 얻는 과정은 지극히 물리적이고 자본 집약적이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유전자 분석 장비(NGS)와 이를 가동할 대규모 실험실, 그리고 수만 명의 혈액 샘플을 확보할 수 있는 인프라는 결코 개별 과학자의 열정만으로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데이터는 연구의 기초를 넘어 ‘권력’이 되었다. 국가 주도의 거대 프로젝트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압도적인 양의 생체 정보를 독점하기 시작하면서, 독립적인 연구자들은 그들이 흘려보내는 데이터를 가공해 분석하는 ‘데이터 소비처’의 위치로 밀려나기 쉽다. 자본이 없으면 질문조차 던질 수 없는 시대, 생물정보학은 어쩌면 가장 자본주의적인 과학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감한 정보, 법이라는 이름의 가두리

생물 정보는 세상에서 가장 은밀하고 위험한 데이터다. 누군가의 DNA 서열은 그의 과거 질병 이력뿐만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손의 미래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수성은 연구자에게 엄격한 ‘윤리적 가두리’를 강요한다.

단순히 알고리즘이 궁금해서, 혹은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고 싶어서 데이터를 들여다보는 행위조차 수많은 법적 규제와 행정적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절대적 명분 앞에서 개별 과학자의 호기심은 번번이 서류 뭉치에 가로막힌다. 정보를 획득하는 방법의 특수성이 연구의 자유를 역설적으로 구속하고 있는 셈이다.



알고리즘보다 인프라가 앞서는 현실

수학적 감각이 뛰어나고 천재적인 알고리즘을 설계할 수 있는 과학자라 할지라도, 그것을 돌릴 ‘슈퍼컴퓨팅 자원’이 없다면 그의 가설은 영원히 텍스트로만 남는다. 수천 명의 유전체를 대조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작업은 개인이 소유한 PC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과학자는 거대한 서버를 보유한 조직에 소속되어야만 자신의 가설을 증명할 기회를 얻는다. 독립적인 ‘개별 과학자’로서의 자아보다 시스템의 일부로서의 정체성이 더 요구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석'이라는 마지막 영토

그렇다면 개별 과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녕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거대 자본이 데이터를 생산하고 국가가 데이터를 통제하더라도, 그 무의미한 숫자의 나열에서 ‘의미’를 건져 올리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시스템은 데이터를 쌓아올릴 수는 있지만, 그 데이터가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지, 생명의 신비를 어떻게 설명할지 ‘통찰’하지는 못한다. 개별 과학자들은 이제 거대한 데이터 폭포 아래에서 자신만의 낚싯대를 드리워야 한다. 비록 데이터 획득은 불평등할지라도, 그 데이터를 바라보는 ‘해석의 창의성’까지 자본이 독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번호20260122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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