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헤도니아(Anhedonia)라는 기묘한 공포
어떤 단어들은 사전적 정의보다 문학적 은유로 다가올 때 훨씬 더 선명해진다. 내게는 '안헤도니아'라는 단어가 그렇다.
소설 속에서 이 병은 기묘하게 묘사된다. 영국 의학협회가 규정하기를, 이 병은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갑작스러운 공포'에서 기인하며, 높은 지대에서 산소 부족을 느끼는 '고산병'과 아주 흡사한 증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정의는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매혹적인 허구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허구는 실제 의학적 사실보다 더 날카롭게 우리의 마음을 파고든다.
실제 의학 용어로서 안헤도니아(Anhedonia, 무쾌락증)는 즐거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hedone'에 부정 접두사 'an-'이 붙어 만들어진 말이다. 이는 우울증의 핵심 증상 중 하나로, 맛있는 음식, 오랜 친구와의 대화, 평소 즐기던 취미 등 과거에 기쁨을 주었던 모든 활동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뇌의 보상 회로가 일시적으로 가동을 멈춘, 말하자면 감정의 '정전' 상태다. 여기에는 공포도, 환희도 없다. 그저 밋밋하고 무채색인 평면의 세계만 남을 뿐이다.
반면 소설이 포착한 안헤도니아는 '상실'이 아니라 '방어'에 가깝다. 소설은 이를 행복의 한가운데서 느끼는 고산병이라 부른다. 고산병이 산소가 희박한 고지대에서 몸이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듯, 안헤도니아는 감정의 밀도가 너무 높은 '행복의 고지'에 도달했을 때, 그 행복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스스로 감정의 문을 닫아버리는 증상으로 묘사된다.
"지금 너무 행복해, 그런데 이게 끝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엄습하는 순간, 우리는 추락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미리 감정을 마취시킨다. 행복을 누리는 대신, 행복으로부터 도망치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종종 이 문학적 의미의 안헤도니아를 겪는다. 좋은 직장, 안정된 관계, 평온한 일상을 누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끊임없이 '다음의 불행'을 예비한다. 행복을 온전히 만끽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도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산병 환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산 아래를 그리워하듯, 우리도 행복의 정점에서 서둘러 일상의 낮은 평지로 내려오려 애쓴다. 상실의 고통을 미리 당겨서 앓음으로써, 진짜 상실이 왔을 때 덜 아프기를 바라는 비겁하고도 슬픈 자기방어 기제다.
의학적 안헤도니아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면, 문학적 안헤도니아는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행복을 잃을까 봐 두려워 숨을 참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희박한 공기 속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다.
고산병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높이에 몸이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사라질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마취시키기보다, 지금 내 폐부로 들어오는 이 밀도 높은 기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설령 조만간 하산해야 할 운명일지라도,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기 때문이다.
#생각번호202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