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라는 상수와 행복이라는 변수
우리는 오랫동안 삶을 '고통의 제거 과정'이라고 오해해 왔다. 모든 고통을 지워내고 남은 자리에 행복을 가득 채우는 것, 그것이 완성된 삶이라 믿었다. 하지만 삶이라는 수식에서 고통은 제거 가능한 변수가 아니라, 식 전체를 지탱하는 '상수'에 가깝다. 고통은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크기를 줄이거나 형태를 바꾸며 끝내 곁에 두고 다독여야 할 삶의 배경이다.
삶에서 고통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의지는, 마치 바다에서 파도를 없애겠다는 결심과 같다. 파도를 없애려 할수록 우리는 바다와 싸우게 되지만, 파도가 원래 거기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비로소 '항해'를 고민할 수 있게 된다.
진정한 삶의 기술은 고통이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는 고통을 어떻게 관리하고 배분할지 결정하는 '운영(Management)'에 있다. 고통의 무게를 견딜 만한 근력을 키우고, 예기치 못한 파도가 덮칠 때 잠시 숨을 참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산다'고 부르는 행위의 실체다.
행복은 상수가 아니다. 그것은 아주 가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변수'다. 우리가 인생에 대해 가졌던 가장 큰 환상은 행복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행복은 한계효용의 법칙에 따라 금세 기본값으로 수렴된다.
그렇기에 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순간'이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맑은 하늘, 고통스러운 하루 끝에 마시는 시원한 물 한 잔처럼, 행복은 고통이라는 긴 배경음악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찰나의 선율이다. 행복이 매 순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삶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드묾이 행복을 비로소 행복하게 만든다.
인생에 고통이 너무 심해서는 안 되겠지만, 고통이 아예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를 더 취약하게 만든다. 고통이 원래 거기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작은 행복에도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된다. 고통이라는 배경이 어두울수록, 때때로 찾아오는 행복이라는 불빛은 더 밝게 빛나기 때문이다.
삶은 고통이라는 비바람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도록 집을 보수(관리)해 나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 중에 가끔 창틈으로 비치는 햇살(행복)에 감사하는 짧은 휴식의 연속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기보다 '관리자'에 가깝다. 나에게 주어진 고통의 총량을 관리하고, 가끔 찾아오는 행복의 원소들을 소중히 기록하며, 0의 상태인 일상을 묵묵히 버텨내는 관리자.
완벽한 긍정의 환상을 버리고 고통의 존재를 승인한 관리자는, 더 이상 행복을 쫓아 비참하게 달리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의 뜰에 핀 작은 꽃 한 송이를 보며 나직이 읊조릴 수 있다. "오늘 고통은 여전했지만, 이 꽃 덕분에 잠시 행복했노라"고. 그 담담한 고백이야말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삶의 태도일 것이다.
#생각번호2026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