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11] 한계효용의 함정

우리는 왜 행복할수록 더 배고픈가

by 민진성 mola mola

우리는 행복을 일종의 '목적지'라고 생각한다. 그곳에 도착해서 깃발을 꽂고 정착하면 영원히 따뜻한 볕 아래서 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우리 몸에는 '한계효용 체감'이라는 무서운 장치가 설계되어 있다. 아무리 달콤한 사탕도 열 개째에는 무덤덤해지듯,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던 완벽한 긍정의 상태도 시간이 흐르면 뇌는 그것을 '지루함' 혹은 아무런 감흥 없는 '기본값(Default)'으로 재설정해 버린다.



0의 상태로 수렴하는 진화적 저주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설계되었지, 행복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한 번의 성공이나 행복으로 영원히 만족해버린다면, 인류는 사냥도, 농사도, 발전도 멈췄을 것이다. 뇌는 우리를 계속 움직이게 하기 위해 아무리 큰 쾌락이라도 순식간에 '영점 조절(Zero-setting)'을 해버린다. 어제의 환희는 오늘의 지루함이 되고, 우리는 다시 그 이상의 자극을 찾아 떠나야만 한다. 행복이 도달하는 순간 사라지는 그림자가 되는 이유다.



성장이라는 이름의 끝없는 트레드밀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끊임없이 '더 나아가는' 것뿐이다. 어제의 나보다 더 성장하고, 어제의 행복보다 더 강한 자극을 얻어야만 비로소 '행복하다'는 느낌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속도를 늦추면 뒤로 밀려나는 트레드밀 위를 달리는 것과 같다. 성장이 멈추는 순간 우리는 다시 '0의 상태'로 추락하며, 그 평범함을 참지 못해 불행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질주하고 있는 셈이다.



'기본값'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이 굴레를 끊을 방법은 없을까? 어쩌면 해답은 '0의 상태(Default)'를 대하는 관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0의 상태를 '공허'나 '지루함'으로 정의하지만, 사실 그 0이야말로 우리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평형점이다. 한계효용이 체감되어 행복이 무뎌지는 것을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새로운 원소를 채울 수 있는 '공집합의 시간'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 끝없는 경주에서 잠시 내려와 숨을 고를 수 있다.



굴레를 인정할 때 얻는 자유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그것이 생물학적, 경제학적 진실이다. 하지만 행복이 지속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우리는 행복의 강박에서 자유로워진다. 행복을 '지속되어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 '잠시 스쳐 지나가는 보너스'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0의 상태인 일상을 더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성장을 향한 질주도 좋지만, 가끔은 체감해버린 효용의 끝에서 담담하게 '지루함'과 악수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한계효용의 굴레 속에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마지막 품위일 것이다.





#생각번호20260122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관련 기록과 개인 아카이브는 여기에서 이어집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