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적 빈부격차라는 새로운 계급
우리는 아이들의 평등한 출발을 위해 '유전자 결정론'을 거부하고 윤리라는 이름으로 기술의 도입을 늦춘다. 하지만 우리가 도덕적 결벽증에 빠져 있는 사이, 자본은 이미 유전자의 비밀을 화폐로 환산하고 있다. 공공이 "인간은 평등하다"는 구호를 외치며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막대한 자본을 가진 이들은 자녀의 유전적 잠재력을 미리 읽고, 교정하고, 최적화하는 '유전적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고 있다.
국가가 윤리적 합의를 이유로 유전자 검사를 질병 진단에만 묶어둘 때, 시장은 발 빠르게 움직인다. 해외 원정 검사나 고가의 프라이빗 서비스를 통해 부유한 부모들은 아이의 지능, 집중력, 신체적 특성을 미리 파악한다. 그들은 아이의 유전자형(Genotype)에 맞는 맞춤형 교육 환경을 '선제적'으로 구축한다. 공공이 보편적 복지를 고민할 때, 자본은 이미 개인화된 최적화를 완성하는 것이다.
진정한 비극은 단순히 정보를 아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유전적 잠재력을 아는 부모는 아이의 시행착오를 줄여준다. 수학적 재능이 부족한 아이에게 억지로 고액 과외를 시키는 대신, 유전적으로 타고난 예술적 감각을 극대화하는 데 자본을 집중한다.
반면, 자신의 유전자형을 모르는 평범한 아이들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에너지를 소모한다. 결국 자본은 유전 정보를 통해 '노력의 가성비'를 극대화하고, 이는 곧 자아실현의 속도 차이로 이어진다. 재능은 더 이상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자본이 발굴하고 가공한 '기획 상품'이 되어간다.
우리가 윤리를 내세워 유전자 기술의 공공화를 막는 이유는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금지'는 기술을 암시장에 가두고 가격을 높인다. 결과적으로 정보는 더 비대칭적이 되고, 유전적 잠재력을 발현할 기회는 부유층의 전유물이 된다. 윤리를 지키려다 오히려 유전적 수저 계급론을 고착화하는 셈이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유전자를 읽는 것이 윤리적인가?"가 아니라, "자본이 독점한 유전 정보를 어떻게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보편적 기회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기술은 멈추지 않는다. 자본은 늘 윤리보다 빠르다. 유전적 잠재력을 발휘할 최적의 환경을 제공받는 것이 아이의 권리라면, 그 권리는 부모의 지갑 두께가 아니라 공공의 시스템 안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가 기술을 외면하는 사이, '유전적 격차'라는 거대한 빙하가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갈라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번호2026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