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이미 '읽지 않은 철학자'였다
어릴 적 철학은 내게 구름 위의 언어였다. 칸트나 헤겔 같은 거장들이 정교하게 쌓아 올린 논리의 성벽은 견고해 보였고, 그 안에서 사용되는 난해한 용어들은 일상과 동떨어진 박제된 지식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문학을 가까이하며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사실 철학은 없던 생각을 창조하는 마술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느끼는 보편적인 사유를 규범화하고 체계화했을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철학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설계도를 그린다면, 문학은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직접 지은 '집'과 같다. 설계도만으로는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의 온기나 비바람이 칠 때의 고통을 온전히 알 수 없다.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철학을 한다. 타인의 무례함에 분노할 때 우리는 '정의'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을 보며 '유한함'을 느낀다. 다만 그 생각들이 파편화되어 있어 스스로도 그 정체를 모를 뿐이다. 철학자들은 이 파편들을 모아 '윤리'나 '실존'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 두었고, 문학가는 그 딱딱한 체계를 다시 우리 삶의 현장으로 가져와 생생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문학이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가 이미 우리 삶의 기본 토대이기에 문학은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문학가를 '친근한 철학가'라 부르고 싶다. 그들은 논리로 우리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당신이 어제 느꼈던 그 이름 모를 공허함이 사실은 이런 것이었습니다"라고 보여준다. 과학이 우리를 호르몬과 세포의 결합체로 진단한다면, 문학은 우리를 '서사를 가진 단독자'로 대접한다. 철학적 개념들이 규범의 옷을 입고 우리를 가르치려 할 때, 문학은 그 규범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부딪히고 깨지는지를 보여주며 우리 마음의 병명을 명명해 준다. "아, 내가 느낀 게 바로 이것이었구나"라는 자각.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과 화해하게 된다.
결국 나를 이해하기 위해 과학뿐만 아니라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나라는 존재는 수치로 환산되는 데이터인 동시에, 끊임없이 의미를 찾아 헤매는 사유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거창한 철학 서적을 읽지 않았어도 우리는 이미 매 순간 삶을 철학하고 있다. 문학은 단지 우리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느끼고만 있었던 그 수많은 사유에 '언어'라는 옷을 입혀 나에게 되돌려줄 뿐이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이야기를 엿보는 행위가 아니라,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철학적 질문들을 깨워 나만의 진단서를 써 내려가는 과정이다.
나는 오늘도 책방의 소설 코너를 서성인다. 그곳에 꽂힌 수많은 책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일상을 더 깊게 들여다보게 하는 렌즈이며, 내가 미처 이름 붙이지 못한 마음의 파편들을 수집해 놓은 철학적 보고(寶庫)다. 직접적인 해결책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 안의 실체 없는 괴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들을 문장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어 주는 것만으로도 문학은 제 몫을 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번호202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