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오염의 '저점'을 높이는 법
환경과 경제의 상관관계를 다룰 때, 우리는 흔히 두 가지 극단에 서곤 한다. 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 혹은 성장을 멈춰야만 지구가 산다는 근본주의적 외침. 하지만 나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조금 더 현실적이고 냉정한 낙관론을 택하고자 한다.
"가난을 뿌리 뽑아 환경을 고치자"는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가난'의 상대성 때문이다. 인류 역사가 증명하듯 경제적 격차는 어떤 형태로든 남을 것이며, 그 격차를 따라 오염의 부산물이 흐르는 '계급의 전이' 또한 피하기 어렵다. 가난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불가능한 미션이라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곳은 다른 지점이어야 한다.
나는 여기서 '오염의 저점(Bottom-line)을 올리는 것'에 주목한다.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지역이나 계층이 오염의 직격탄을 맞으며 생존권까지 위협받는 그 극단적인 상황을 방지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현실적인 환경 정의다.
이 과정에서 부유한 국가와 계층의 개입은 필수적이다. 이는 단순히 가난한 이들을 돕는 시혜적 차원이 아니다.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의 과정에서 발생한 오염을 하류로 떠넘긴 것에 대한 정당한 '비용 지불'이어야 한다.
부유한 이들이 더 많은 자본과 기술을 투입해 오염 처리 시스템을 공공화하고, 환경 파괴적 노동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일. 즉, 사회 전체의 '환경적 기본권'을 상향 평준화하는 일에 그들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가난을 없앨 수는 없어도, 가난하기 때문에 오염의 쓰레기통이 되어야 하는 필연성은 끊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낙관론은 "기술이 다 해결해 줄 거야"라는 무책임한 방관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이기심과 경제적 격차를 인정하되, 그로 인한 피해가 특정 계층에만 고이지 않도록 강제로라도 물길을 정비하자"는 치열한 개입론에 가깝다.
성장이라는 엔진을 끄지 않으면서도 그 매연이 누구의 폐로 흘러들어가는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그 필터를 만드는 비용을 엔진을 돌리는 이들에게 더 무겁게 지우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마주한 환경 문제의 비극적 고리를 끊는 가장 현실적인 발걸음이 될 것이다. 가난의 완전한 박멸은 불가능할지라도, 오염의 비참한 최전선은 분명 지금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옮겨갈 수 있다.
#생각번호2026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