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이별하는 일 D-20 | 내향인을 위한 런던 가이드
정적이고, 조용한 곳에서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내향인들이 있다. 충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사색할 수 있는 시공간을 필요로 하고, 친구들을 만나기 전 최소 이틀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들. 금요일 밤에 핫하다는 펍에서 음악과 술을 즐기기보다는 얼른 집에 돌아가 뽀송하게 샤워를 하고 따뜻한 침대 위에서 밀린 넷플릭스를 보고 싶다고 느끼는 사람들. 나는 그런 내향인 중 한 명이다.
해외에 사는 것이 종종 자극 추구와 모험심의 증거로 여겨지기 때문에, 내향적인 사람의 해외 생활이 어쩌면 모순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향적이라고 해서 늘 안전한 선택을 한다거나 새로운 도전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외부로 나가 에너지를 충전한다는 느낌보다 소모되는 느낌을 종종 경험할 뿐.
런던은 늘 바쁜 도시라 이제는 외출 후에 몰려오는 피로감에 많이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몰려드는 인파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조용히 책을 읽거나 사람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이 가끔씩 그리울 때가 있는데 다행히도 런던 안에서 그런 곳들을 발견하는 행운이 있었다. 나와 같은 내향인 여행자 혹은 워홀러를 위해 런던을 조용히 즐길 수 있는 장소 세 곳을 소개한다.
1. Saint Dunstan in the East Church Garden
런던 브릿지 근처에 위치한 Saint Dunstan in the East Church Garden 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폭격을 받고 파괴된 교회를 퍼블릭 가든으로 복구한 곳이다. 나만 알고 싶은 런던의 장소가 있다면 단연 이 곳을 꼽을 것이다. 예쁘게 가꾼 가든뿐만 아니라, 런던 같지 않은 조용한 분위기가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현지인 중에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방문할 때마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무한 추천하는 곳!
2. The National Poetry Library
The National Poetry Library는 로열 페스티벌 홀(Royal Festival Hall) 내부 5층에 위치한 런던 내 유일한 시(poetry) 도서관이다. 현대 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으로써는 세계 최대의 규모로 1953년에 the Arts Council에 의해 설립됐고, 시인 T.S. Elliot과 Herbert Read에 의해 개관됐다. 도서관 내부에 포이트리 룸(poetry room)이라고 해서 시인들을 위해 작문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들도 마련돼있다. 굉장히 조용한 분위기로, 아동 도서부터 컨템포러리 문학 매거진 등 다양한 종류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어 영시를 좋아하거나 독서를 좋아하는 내향인이라면 추천하는 곳. 영국에 거주할 경우, 무료로 멤버십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고, 도서를 대출할 수도 있다. 도서관이 위치해 있는 로열 페스티벌 홀의 건물 자체도 멋져서 사우쓰 뱅크(South Bank) 근처에 갈 일이 있다면 방문을 추천한다.
3. Petersham Nurseries Cafe
런던 센트럴을 잠시 떠나 리치몬드 파크(Richmond Park)를 방문하기로 했다면, Petersham Nerseries Cafe도 함께 방문하기를 적극 추천한다. Cafe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원래는 음식으로 유명해진 곳. 식사 때를 놓쳐 도착했거나 다소 높은 식사 가격대가 부담스럽다면 커피와 디저트도 판매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 갖가지 종류의 식물과 가드닝 제품들로 먹을거리와 볼거리 모두 가득한 이 카페는, 인기가 많아 손님은 끊이지 않지만 워낙 큰 규모 덕분에 복닥거리는 느낌 없이 편안하게 즐기다가 올 수 있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푸드 메뉴는 시도해보지 않았는데, 꽃으로 장식한 케이크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디저트가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런던 센트럴 코벤트 가든에도 분점이 하나 있지만, 분점은 별로 추천하지 않는 편. 센트럴에 위치하다보니 규모의 제한도 있고, 피터샴의 트레이드 마크인 '플랜테리어(Planterior)' 무드를 살리지 못했다. 반면, 리치몬드에 위치한 본점은 햇살 좋은 주말, 잠시 나들이를 하러 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피크닉 스팟.
만약, 이 세 장소를 방문하는 것 이외에도 런던에서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더 알고 싶은 내향인이 있다면 Tessa Watt의 'Mindful London'이라는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런던이라는 대도시에서 수많은 사람과 부딪히며 살아가면서, 마음 챙김을 통해 어떻게 내면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 책으로 개인적으로 도움을 꽤 받았다.
그럼 런던을 유랑하는 내향적인 워리어들의 평화로운 외출을 응원하며,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