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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amola Mar 02. 2020

영국 워홀을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가려는 이유

런던과 이별하는 일 D-5

 돌아가기에 앞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가기 전까지 또 만나야 한다. 모두 내가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지, 내 귀국 소식에 갑작스러워했다. 그 당황스러운 얼굴들을 보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정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얘기한다. 누구에게 설명을 빚져서가 아니라, 모두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해외에서 '성공'하고 싶어 했는지 알기에, 내 귀국 소식에 조심스러워한다. 혹시나, 상처 받아서 돌아가는 것일까 봐 걱정하고 염려하는 모든 비언어적 소통이 정확히 '걱정'의 의미로 나에게도 흘러 들어온다.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하게 떠난다는 걸 말해줄 수 있을까 싶다가도, 떠나는 내가 불행해 보인다면 저 사람은 여기서 행복하구나 싶어서 한 편으로 다행인 마음이 들기도 한다.


 워홀을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가는 이유를 찾는 건 개인적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린 과제였다. 나는 돌아가고 싶었으나, 왜 돌아가고 싶은지 그 이유를 찾는데 오래 걸렸다. 내게 해외 생활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도 정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리고 왜 돌아가고 싶은지 이유를 찾고 나서는 지체 없이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이미지 출처: Headway on Unsplash


 나는 성공하고 싶었다. 내가 정의하는 성공이란, 업계와 회사에서 현직자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내 팀을 꾸려 나가는 것을 말했다.  아직 어리고, 배울 것들이 태산 같이 쌓여있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고 싶었다. 프로젝트를 도맡아서 팀원들과 머리를 싸매고, 성공을 이뤄내는 그런 멋진 '팀장', 그게 내 머릿속에 잔상처럼 머무는 성공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도저히 영국에서는 내가 팀원들을 이끄는 팀장이 되는 모습은 그려지지가 않았다. 나조차도 너무 당연하게 영국에서는 영국인만이 관리직 업무를 맡는다라고 생각해왔던 걸까? 한국에서는 한 발 자국, 한 발 자국 내딛으면 앞길이 보일 것 같았는데 영국에서는 내가 어떻게 커리어를 성장시킬 수 있는지 한눈에 보이지 않았다. 불분명한 비자 생활도 그렇고, 영원히 '외국인'의 틀에 박혀있을 내 지위도 그랬다. 아무리 영어에 대한 칭찬을 듣는다 한들, 언어에 대한 칭찬을 받는 것 자체가 내가 이방인인이라는 증거였다. 게다가 영국 애들끼리 말할 때와 나에게 말할 때 쓰는 단어, 방식이 분명 다르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영국 사람들에게 나는 이방인인데, 이방인으로써 그들을 이끄는 리더가 된다는 건 너무 뜬 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렸다. 물론, 영국에서도 성실한 팀원이 될 수도 있고, 꾸준히 하다 보면 관리직으로 승진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나의 어떤 걸 포기해야 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건, 지난 4년 동안 겪은 영국 사회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Agus Dietrich on Unsplash


 둘 째로는, 일이나 공부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 싫었다. 위에도 언급했듯 비자, 국적, 문화 차이 등 한국에서는 생기지 않을 문제가 영국에 있으면 계속해서 생겼다. 물론, 이런 요소들이 처음부터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워홀에 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걸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비자 전쟁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가족이나 연고 없이 지내는 계속해서 해외 생활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워홀 초반 6개월 내내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문제들이 연달아 생겼고, 인종/문화/언어/비자 등의 문제들을 이겨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처음으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겪지 않았을 문제일 텐데,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면서 해외 생활을 지키고 있는 거지라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우스운 건, 몸고생, 맘고생을 하면서 지킬만 한 것이 영국에 없다는 것을 얼마 안가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고, 직장도 없고, 가족도 없다. 좋은 친구들이 몇 명 있지만, 그뿐이었다. 특별히 영국의 문화나, 영국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살다 보니 점점 적응이 됐고, 편해졌고, 좋아진 문화들이 있지만 그건 세계 어디에 살았다 하더라도 자연스레 밟을 수순이었다. 내 관심사는 늘 나의 성장과 배움이었지 어느 나라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있는 곳이 딱히 영국일 이유도, 한국일 이유도 없었다. 다만, 한국은 모국이기 때문에 외국인으로 해외에 살 때 오는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이 이제는 큰 메리트로 느껴져 한국에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 뿐이었다.


 결론적으로, 한국이 더 좋고 영국이 싫어서 워홀을 그만두고 돌아가는 건 아니다. 딱히 둘 중 어느 나라도 더 좋거나, 더 싫거나 하는 기호의 영역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다만, 내 꿈을 펼치는데 조금이라도 용이한 곳을 골라서 떠나는 것이다. 자질구레한 스트레스 거리가 없고, 일상에 필요한 시설, 시스템이 조금이라도 더 잘 갖춰져 있는 곳. 그런 곳은 내게 영국보다는 한국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떠나면서 행복하다.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잘 사는 것이지, 내가 영국에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나는 한국에서도 잘 지내고 싶다. 아니, 사실은 어디에 있는 것과는 별개로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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