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인사이트]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 진짜인 듯, 진짜 아닌, 진짜 같은 이 소설은 양립할 수 없는 두 축,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좁혀지지 않는 양쪽 맨 끝에 서 있는 것들, 마치 S극과 N극처럼 정 반대의 성질을 나타내는 것들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과학과 종교, 창조와 진화, 천사와 악마. 이러한 대척점은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도저히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대립점들은 사실, 서로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두 가지가 함께 '공존' 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S극이 없다면 N극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악마가 있기에 천사가 천사의 역할을 할 수 있고, 천사가 있기에 악마가 그에 반하는 악마의 역할을 할 수 있듯이. 그게 설령 우리가 멋대로 믿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러한 것들 중 이 소설에서 집중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두려움과 믿음. 두려움이 있어야 그것을 이겨낼 희망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고, 존재할 이유가 생긴다. 더 큰 두려움은 더 큰 믿음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반대로, 믿음이 클 수록 두려움이 커지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을 종교에 대입한 인물 카를로는 결국 파국을 향해 전력 질주를 하고 만다. 거대한 믿음을 위해 절대악을 만든 카를로의 신념은 매우 극단적인 것이 분명하지만, 삶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반대되는 것들이 오히려 서로를 만들어낸다는 관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삶이라는 게 거의 다 그런 것 같다.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무리를 만들고, 무리에서 상처받으면 자기방어를 치며 혼자가 되고, 아프니까 운동을 하고, 건강을 챙기니까 아프지 않고, 죽음이 두려워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사는 것이 벅차 죽음을 꿈꾸고. 이런 것들이 있기에 삶이 지속된다. 어쩌면 한 가지만 있어서는 제대로 살 수 없을 수도 있다. 무엇이든, 그것에 반대되는 것이 공존해야 모든 것에 의미가 생기니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두려움을 갖고 사는 것은 때론 나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두려움을 이겨내겠다는 강인한 마음이던, 그렇게만은 되고 싶지 않다는 더 큰 두려움이던, 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자. 어떤 무게가 나를 누르더라도. 그 무게가 나를 위한 두려움이고, 의미가 있는 두려움이고, 나를 만들어주는 두려움이 될 수도 있으니. 언제나 그에 반대되는 것이 내 안에, 내 주변에 공존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다시금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대립과 공존. '천사와 악마'에서 하나인 듯, 하나 아닌, 하나같은 것들을 만나 뜬금없게도, 위안을 얻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