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인사이트]
기본 정보
개봉 : 2019
감독 : 노아 바움백
출연 :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로라 던
시놉시스 : 파경을 맞았지만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한 가족을 예리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
수상 :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골든글로브 노미네이트
구성
두 사람의 장소 그리고 처지가 결혼 전후, 이혼 전후로 서서히 교차되며 전환된다. 씨네21은 대칭적인 하나의 짝으로 구성된 영화라고 말한다. 결혼과 이혼, 뉴욕과 LA, 찰리와 니콜,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다는 점까지. 상반된 것들의 조화가 불편하면서도 흥미롭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쌓여가는 시간의 힘이다. 이 모든 시간들을 보내고 나야지만 느낄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인물들도 관객도 끝내 느끼게 된다. 그건 우리의 삶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며, 어쩌면 간접적인 경험으로는 다 채울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상 깊은 장면
[서로에 대한 편지]
오프닝이 너무 따뜻해서 더 마음이 아프고 아리다. 서로에 대한 장점을 쓴 편지가 내레이션으로 깔리며 결혼생활의 모습이 조각조각 나오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행복한 가정인 줄만 알았다. 사실 편지는 이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담사의 권유로 쓴 것일 뿐. 하지만 그건 두 사람 다 분명 진심이었을 것이다. 편지를 읽고 싶지 않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니콜마저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진심은 영화의 말미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글 읽는 것이 아직 서툰 아들 헨리를 위해 찰리가 읽어주는 것은 바로 니콜의 편지였고, 편지를 읽는 찰리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니콜도, 그리고 관객들도 그들의 진심을 그저 온몸으로 느낀다.
여기서 연출적인 탄탄한 구성도 드러난다. 영화 중반부에 찰리와 이야기하는 헨리의 모습에서 이따금 글을 잘 읽지 못하는 부분이 나온다. 아직 글이 서툰 아들에게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스스로 깨치도록 역질문으로 가르치려는 찰리의 모습도 녹여져 있다. 아들 헨리는 그런 아빠가 버겁다. 하지만 그랬던 찰리가 이혼 과정이 모두 끝난 후 변화한 모습을 보인다. 헨리가 궁금해하는 걸 그저 읽어주고 알려주는데, 이혼 과정 때의 모습과는 사뭇 대비된다. 헨리가 글이 서툰 것, 권위적이었던 찰리의 모습, 솔직하지 못했던 니콜,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마지막 이 순간을 위해, 찰리의 변화와 비로소 깨닫게 되는 니콜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 전반적으로 녹여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시나, 의미 없는 것은 없었다.
[이혼 후 LA로 오게 된 찰리]
뉴욕을 고집했던 찰리가 이혼 1년 후 LA에서 교수를 겸직하게 되어 1년간 머무르게 된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니콜의 표정은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이 보여준다. 결혼생활을 하며 그렇게 원했던,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도 계속 원했던 LA 생활을 왜 이혼을 한 후에야 하겠다는 건지. 왜 이제야.. 니콜은 원망과 허탈함이 섞인 진심 어린 축하를 찰리에게 보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일까.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왜 이제야’라는 물음을 가장한 원망은 참 씁쓸하다. 왜 다 지나고 나서야 보는 걸까, 왜 다 지나고 나서야 듣는 걸까, 왜 다 지나고 나서야 이해하는 걸까. 이미 그때의 나는 없고, 그때의 아픔을 겨우 하나씩 덮어가고 있는데. 돌이킬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는데, 씁쓸하고 안타깝고 허무하면서도 애틋해지게 왜, 왜 늘 이제야 그러는 걸까. ‘왜 이제야’는 뒤늦게 쫓아가는 사람도 아프다. 나는 왜 이걸 이제야 깨달은 걸까, 스스로 자책하는 순간을 계속해서 버텨야 하니까. 모두에게 힘든 그 원망은 왜 자꾸 모두에게 찾아오는 걸까.
[상처 주려는 대화]
이혼 소송이 복잡하고 심각해지자 두 사람은 서로 대화를 통해 합의를 하기로 한다. 하지만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서로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점차 날카로운 말들로 상처 주게 된다. 점점 높아지는 강도에 어떻게 저런 말까지 하지 싶다가, 어느 정도를 벗어나니 ‘아, 진심을 넘어서 이제는 그냥 상처를 주려고 아픈 말을 내뱉는 거구나.’라고 변화된 목적을 이해하게 됐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날카로움을 다 가져와 던져버리는 순간. 두 사람은 스스로 던진 폭언에 스스로 무너진다. 왜 그렇게까지 한 걸까? 두 사람은 이미 너무 지치고 힘든 상태이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서로가 원망스럽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가 미치도록 밉다. 없던 비수도 만들어 꽂을 만큼. 하지만 그건 결국, 나를 알아달라는 발악일 수도 있다. 내가 너로 인해 이만큼 아프고 힘들다고, 오로지 너로 인해 내가 이렇게 무너졌다고, 날 그만 아프게 해달라고, 내 얘기 좀 들어 달라고.. 상처를 주면서까지 제발 좀 알아줬으면 해서, 내 마음을. 사람들은 내가 이해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대게는 회피하거나 폭발한다. 계속해서 차분히 소통하려 노력하기란 남의 이야기일 때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어려운 이야기다. 그저 한 번 더 들어보면 달라질 수도 있을 텐데, 나눌 수만 있다면 진심은 결국 통할 텐데. 하지만 이런 이야기 역시 글 속에서나 가능한 이상적인 이론일지도.
인상 깊은 인물
[니콜]
나는 두 사람 중 왜 니콜을 응원하게 되었을까. 니콜은 인정받고 싶어 하며, 독립된 자아를 찾고 스스로 서있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사랑에 상처받고, 삶에서 뒤처졌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고,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니콜을 응원하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온전히 나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까. 자신을 찾고자 하는 니콜이 안쓰럽고 대견하고 애틋하다. 그 과정에서 이혼의 방법이 과해져 찰리를 힘들게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찰리에게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니콜처럼 나도,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고 자신의 삶을 잘 쌓아가고 있는 찰리가 부럽다. 찰리 같은 사람들이 부럽다. 그래서 니콜에게 마음이 간다. 그녀의 마음을 내가 느껴봤고 여전히 느끼고 있기에. 니콜은 찰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떠난 것이 아니다. 찰리의 아내가 아닌 니콜로 살고 싶었을 뿐이다, 찰리가 찰리로 살듯이. 이 세상 모든 니콜에게, 그리고 나에게 나는 오늘도 응원의 마음을 건넨다.
제목의 의미
결혼이란 과연 무엇일까, 또 이혼이란 무엇일까.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보이는 결혼과 이혼은 사실 같은 선상에 있다. 결혼을 하거나 이혼을 하거나가 아닌, 결혼이 끝나면 이혼을 하는 것이 아닌. 결혼을 해도 이혼을 할 수 있고, 이혼을 해도 결혼생활에서 만든 모든 것이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온통 이혼에 대한 이야기뿐인데 영화의 제목이 ‘결혼 이야기’인 것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결혼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결혼’과 이혼’의 의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모두 녹여져 있다. 찰리는 니콜을 대신해 잠든 헨리를 데려가고, 니콜은 그런 찰리의 풀린 신발 끈을 묶어주는 모습. 두 사람은 결혼이 끝나도 서로에 대한 사랑이 끝난 것은 아닐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스러운 아이 헨리가 있고, 서로를 사랑했던 순간이 있고, 함께 쌓아온 시간들이 있으니. 이혼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함께 살아가고, 여전히 부딪히고, 여전히 보듬어준다. 결혼도 이혼도,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혹은 무너지는 경험을 얻게 되는 것 외에는 모든 순간이 그저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삶일 뿐이다.
연기
대부분의 독백 혹은 감정씬이 원테이크로 이루어져 있어서 보는 내내 적잖이 놀랐다. 어떻게 저런 감정들을 한 번에 끝까지 이끌고 가는지. 혼자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를 온전히 영화 속 인물로 믿고 스스로도 믿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두 배우는 순식간에 변화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감정들을 다 연결해서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특히 니콜 역의 스칼렛 요한슨은 자격지심과 불안함, 부러움, 행복, 사랑, 자존심, 두려움 등 엄마이자 아내이자 여자이자 한 사람으로서 겪는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의 변화를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준다. 눈빛으로, 시선으로, 눈물과 웃음, 표정, 목소리의 떨림, 몸의 움직임. 모든 것이 너무나 자유롭고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