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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Jul 26. 2020

<Intro> 티베트에서 새롭게 만난 '나'란 존재.

나는 타인으로 인해 정의된다.

 인간의 인생은 하나의 여행이며, 여행이 곧 인생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생 중에서 꼭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하나가 바로 고원의 전설과 눈 덮인 수많은 고봉을 품은 티베트일 것이다. 나는 오래전 스물과 서른의 언저리에 참으로 운이 좋게도 그러한 기회를 잡게 되었다. 그 기회라 함은 중국 사천성의 성도인 청두(成都)에서 서장자치구의 성도인 라싸(拉萨)까지 약 2000km나 되는 길을 도보로 여행하는 이색적인 경험을 한 것이다. 나는 이 기회 덕택에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티베트 고원의 한 귀퉁이에서 인생의 어려운 한 고비를 힘겹게 맞이한 젊음의 한 때를 지내면서 진정한 나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나는 누구인가 라는 끝이 없던 물음에 명확한 느낌표를 얻고 돌아왔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티베트 고원을 이 활자라는 좁은 공간 안에다가 어떻게 다 설명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어느 누구라도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곧 고원 아래의 시간과 날짜 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시사철 눈이 녹지 않는 설봉에 둘러싸인 세계의 지붕 티베트 고원은 해가 뜨고 지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시간의 흐름도 좀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높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끔 어떤 곳은 하늘과 맞닿아 시공의 구분조차 하기 힘든 경이로운 땅이기도 하기에 그 어떤 누구라도 고원 아래에서 느꼈던 시간적 흐름에 대해 신경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적 흐름이 사라져버린 티베트 고원의 어머니와 같은 너른 품 안에서 나는 매일 밤마다 칠흑같이 어둡지만, 밝은 밤하늘 색에 조물주가 직접 흩뿌려 놓은 보석처럼 맑고 영롱한 고원의 별빛을 올려다보면서 줄곧 탄성을 자아내곤 했었다.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모험은 곧 자신을 자신답게 발견해 가는 순간들 속에 있다.


 한 번은 어느 깊은 고원 마을에서 그 날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일행들과 함께 한 티베트 민가에서 하루를 묵었을 때의 일이다.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모두가 대충 얼굴만 씻은 채 한 방에 들어가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였다. 그 날도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밤하늘은 세상의 그 어떤 인공적인 빛이 침범할 수 없는 어둠 속에 빠져 있었음과 동시에 구름 한 점 없이 무척이나 맑고 깨끗했기에 그 밤의 은은한 달빛이 내가 잠을 청하고 있는 작은 방의 조그마한 창문을 뚫고 방안 가득히 햇살처럼 밀려 들어왔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그날의 육체적인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어느센가 깊은 잠에 빠져들어 조용한 숨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방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잠을 청하기 위해, 그리고 온 몸을 파고드는 한기를 피하기 위해 따뜻한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린 채 불 꺼진 침대에 누워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깊은 협곡을 휘둘러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계곡 물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깊은 밤에도 끊임없이 세차게 흘러내리는 그 계곡 물소리와 생애 처음으로 맡아 본 티베트 고원의 생소한 밤공기가 전해주는 그 신비한 느낌 때문에 이상하리만큼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 다시 그 날 밤의 일을 되짚어보니 그날은 분명 며칠 동안 쉬지 않고 길을 걸었던 터라 나의 육체가 몹시 피곤하여 곧바로 잠을 원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실 내가 쉽게 잠들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여행을 시작한 후부터 줄곧 따라다니던 어떤 생각 때문이었다. 그 생각이라 함은, ‘나는 누구이며 지금까지 무엇을 이루어 왔고, 또 앞으로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진지하면서도 끝없이 반복되는 한 젊은이의 삶과 고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여행은 흥미롭고 새로웠으며, 매일같이 신나는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왜 하필 그날 밤에 그런 생각이 나를 강하게 사로잡아 잠들지 못하게 했는지 나는 지금까지도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새벽이 오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 날 밤, 나는 그 질문의 답을 찾아보고자 자연스럽게 내가 살아내어 온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 때에 나는 과거의 나의 삶에서 그릇된 선택과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젊은 날의 시간을 허비해버린 선택의 순간들을 하나씩, 하나씩 찬찬히 발견할 수 있었다. 많은 번민과 질문들과 다양한 곳에서 보았던 수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결국 마지막에 떠오른 것은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어떤 깨달음을 하나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삶이란, 수없이 반복되는 긴 여행과 같은 것이다’라는 명제였다.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각각의 도상(途上)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는 여행,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좋든 싫든 간에 누군가와는 함께 가야만 하는 그런 긴 여행 말이다.


 그래서 그 깊은 밤에 나는 내 인생을 조심스럽게 돌아보며 나와 함께  인생이라는 긴 여행길에 오른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들을 전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리고 철없던 나를 깨닫게 해주었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길고 긴 시간을 먼저 기다려주고 사랑해 주었고, 심지어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을 때조차 한 마디 말로 깊은 위로를 전해주었던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의 인생이자 스승이었고, 현재의 나를 존재하게끔 만든 고귀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살아 있는 현재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주었다.


 이러한 생각이 갑자기 밀려들자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에 함께 존재하고 있음에 무한한 감사와 감동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그 때, 내 삶의 한 고비 고비 때마다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의 삶에 한 조각 기억이 되어준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한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이윽고 밤과 새벽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사위(四圍)가 더욱 조용하고 깊어지자 나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진 내 삶을 이 곳, 눈 덮인 티베트에서 다시 한 번 정리해야 할 어떤 의무감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위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나의 글은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내 인생의 작고도 부끄러운 고백이며 깨달음이자, 끝없이 이어진 긴긴 인생이라는 여행길에 대한 나의 짧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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