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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Jul 24. 2020

해발 4000m 고원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티베트 고원 도보 여행

 티베트 고원.


 내가 기억하는 그 고원의 모습은 언제나 멀리 보이는 봉우리에 아름답게 싸인 하얀 눈과 태곳적부터 그 어느 누구도 손대지 않았던 거친 바위들 틈 사이로 자라는 이름 모를 억센 풀들, 하늘의 새하얀 구름을 담고 있는 거울같이 맑은 호수, 그리고 바람이 부는 소리를 제외한다면, 단지 지극히 고요한 적막감 같은 것들뿐이었다. 이따금씩 그곳에는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세상의 모든 소리가 깊이 잠들어 있기도 했고, 밤하늘에는 세상에서 가장 밝고 아름다운 별들이 매일같이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했다. 또한 그곳은 바람과 하늘이 만나는 땅이자, 세상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 가운데 하나였다. 그 티베트 고원에 대한 나의 강렬한 첫 기억과 인상은 내가 도보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어느 조그마한 산골 마을을 지날 때의 일이었다.

 


 내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 이곳이 과연 어디쯤인가를 깨달았을 때 즈음,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서쪽의 '라싸拉萨'(중국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서장자치구西藏自治区의 수도로, 현재 인구는 약 40만 명이며 모든 티베트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며, 옛 이름은 티베트이다)를 향해 끝없이 걷고 있었다. 해발 4000m가 넘는 고원의 입구에 다다르자, 나는 황량한 산등성이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검은 물체를 보았다. 주인 없는 고원에 인간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는 동물인 야크 떼였다.


야크는 티베트나 히말라야 주변에 살고 있는 긴 털 달린 소의 명칭이다.



 같은 시각,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진 날씨 변화로 인해 지나가는 차를 잡아탄 다른 일행들은 먼저 '리탕理塘'(중국의 서남부에 위치한 쓰촨 성四川省의 성도인 청두成都로부터 서쪽으로 약 700km 떨어진 곳으로 해발 4014m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 중에 하나이다)에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리탕으로 향하는 유일한 산길을 따라 하루 종일 걸어 올라가 보았지만 리탕으로 가는 그 어떤 자동차나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내가 메고 있던 무거운 배낭도 먼저 리탕으로 출발한 일행에게 이미 부탁했기 때문에 날이 어두워지기 전까지는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 타고서라도 목적지까지 가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 영하의 기온에 두꺼운 옷이나 침낭도 없이 산속에서 밤을 지새웠다간 얼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어찌해야 하나?


 이미 오후 5시가 넘었다. 깊은 산속 겨울의 해는 빨리 저무는 법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태양빛으로 인해 그나마 온기를 품고 있던 공기마저도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산을 계속 오르다 보니 다행히 산 중턱에서 작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좀 더 가까이 올라가서 보니 사람들이 사는 민가에서 흘러나온 약한 불빛 같았다. 산속에서 겨우 몇 가구 정도만 모여 사는 자그마한 티베트인들의 마을인 것 같았다. 마을의 이름을 알려주는 표지판에는 '씨앙꺼쫑춘相格宗村'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을 입구에서 저녁 7시까지 리탕으로 향하는 자동차를 기다려 보았지만 해가 저문 깊은 산길을 달리는 어리석은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먼저 길을 떠난 일행이 내게 남기고 간 작은 가방에는 몇 개의 '만토우满头'와 과자, 그리고 약간의 초콜릿과 물 한 병이 전부였다.

 이미 해가 저물어 버렸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얼굴과 손발은 영하의 기온에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을 등대 삼아 가파른 비탈길을 조심스레 올라갔다. 나의 거친 숨소리가 턱까지 차오를 때 즈음에 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불이 켜진 어느 집 앞에 다다랐다.

  


 선택의 기로에 서다. 


 나는 매섭게 불어오는 고원의 바람과 무섭게 옷깃을 파고드는 냉기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급하게 그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색 벽으로 네모꼴의 형태로 지어진 티베트인들의 전통가옥은 보통 삼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층마다 건물의 모양과 비슷하게 네모난 정방형 나무로 창틀을 만들고 거기에 유리를 끼워서 만든 창문이 두세 개쯤 나있고, 창문 주변은 보통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창문의 위쪽에는 여러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작은 나무 처마와 타르초와 룽다(히말라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경이 쓰여 있는 네모난 천을 이어서 만국기처럼 만든 깃발이며, 다섯 가지 색깔로 이루어져 있다. 이 색깔은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 및 방향을 뜻한다. 파란색-하늘-동쪽, 흰색-구름-서쪽, 빨간색-불-남쪽, 녹색-물-북쪽, 노란색-땅-가운데를 뜻한다. 타르초와 룽다의 큰 차이는 없으며 수직으로 깃대와 함께 세워져 있으면 룽다이고 만국기처럼 수평으로 매달려 있으면 타르초이다. 룽다나 타르초는 모두 티베트 말임)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옥상인 삼층의 제일 윗부분은 티베트인들의 독특한 적갈색 염료가 칠해져 있었으며 그 사이로 볏짚으로 만든 나무 주추 대가 가지런히 쌓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전통적인 티베트 가옥


 이러한 티베트인들의 가옥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양과 구조를 갖추고 있었는데 모든 것이 춥고 건조한 고원의 기후와 연관이 있다. 벽이 흙이나 돌로 만들어진 것은 방한과 방열 때문이고, 대부분의 벽이 흰색으로 칠해진 이유는 여름의 뜨거운 일조량으로부터 실내 온도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인 티베트인들의 가옥 구조는 일층은 가축을 키우는 우리, 혹은 물건이나 식량을 저장하는 창고로 쓰이고, 이층은 부엌을 비롯한 거실과 침실, 그리고 화장실 등의 생활공간으로 쓰이며, 삼층은 옥상을 겸해 한편에 이들의 전통신앙인 라마불교의 불상을 모시는 작은 신당으로 쓰이는데 이 집 역시 그러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나마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한 전통 티베트 가옥과 뒷산에 걸린 룽다와 타르쵸.

 

 내가 이 집의 문을 열고 일 층 안으로 들어가 보니 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며 몰래 이 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자 오래된 나무에서 흔히 나는 삐걱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갈라진 문틈으로 화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내가 이층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마침 온 가족이 함께 막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의 모습에 모두들 신기해하는 얼굴로 아무 말도 없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나는 무어라 말도 못 하고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지나온 사정을 천천히 설명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외로운 영혼을 친절히 맞아 주었고, 흔쾌히 자신들의 식탁에 초대해주었다.


 그들의 저녁상은 밀가루와 보리 외에 몇 가지 곡식을 함께 갈아 주먹 반만 한 크기로 빚어 만든 티베트인들의 주식인 짬빠와 밀가루를 밀어 화로에 구운 떡, 말린 야크 고기, 그리고 녹차와 야크 버터를 썩어 만든 수유차가 전부였다. 그들은 나에게 손님이라는 칭호를 달아주며 그 자리에서 야크 고기와 야채를 함께 볶은 특별 음식도 만들어 주었다. 맛이 기가 막혔다. 나는 며칠간의 추위와 배고픔으로 인해 식욕이 다른 날에 비해 훨씬 더 왕성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식사를 하면서 나는 이상한 점 한 가지를 눈치챘다. 그것은 그들이 내가 먹고 있는 고기에는 전혀 손도 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궁금해서 그들에게 물어보니, 그중에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한 노인이 그 날은 전통 티베트 달력의 절기상 고기를 먹지 않는 날이라고 짧게 대답해 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식사를 계속했다.



 혼자만의 생각 속.


 방 안에는 어린아이 둘을 포함해서 모두 7명이 함께 있었다. 나는 그들 중에 한 쌍의 젊은 부부는 두 아이의 부모란 것을 언뜻 알아차렸지만, 그 외의 노인들에 대해서는 도대체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이러했다. 보통의 티베트인은 원래 물이 귀하고 추운 고원 지방에 살기에 따뜻한 물에 잘 씻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강렬한 햇볕에 그을려 피부가 검고 평생을 길러 길게 늘어뜨린 장발과 아주 건장한 체격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그 방 안에 함께 있던 노인들이 바로 그러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이 나로 하여금 그들의 나이를 좀처럼 가늠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아이의 아버지에게 가족 관계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가 옆에 앉은 50대 정도로 보이는 두 노인은 자신의 부모님이라 했고, 그 옆에서 계속적으로 '찡통经筒'을 돌리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티베트 말로 기도문을 외우고 있던 백발의 노인은 올해 78살이 되신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대답해주었다. 즉 이 집에는 4대가 한 집에 모여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할아버지 곁에서 줄곧 장난을 치고 있던 귀여운 아이들은 추운 날에 바지도 입지 않고 나무로 만들어진 마룻바닥을 헤집고 다니면서 세상의 여느 아이들처럼 순수한 눈망울로 세상을 담고 있었다. 이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이란 바로 가족과 함께 사는 작은 흙벽돌 집, 그리고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고원의 마을이 전부 이리라.



 영혼에 평온함이 피다.


 내가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일행으로부터 홀로 떨어진 나의 불안한 영혼에 이내 고요한 평온함이 밀려왔다. 뭐라고 해야 할까? 세상과 단절된 고원의 어느 산골에 사는 낯선 이들에게서 내가 받은 첫인상이란,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예고도 없이 밤중에 불쑥 찾아온 불청객을 가족처럼 챙겨주는 친절함과 묻는 말에 거짓이 없이 흔쾌히 답해주는 그런 따스함 같은 것들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멀리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하니 그들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어디를 통해서 오게 되었는지, 또 식사는 잘 챙겨 먹는지 등등,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물어봐 주었다. 그래서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홀로 집을 떠나와 외로움에 지쳐 있던 나의 영혼이 오히려 순수한 영혼을 가진 그들로 인해 다시 살아 난 기분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화롯불의 불길이 희미해져 갈 때까지 나는 그들과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아버지는 나에게 피곤에 지친 몸이 쉴 수 있도록 뜨거운 물을 준비해 주었고, 거기에다가 두툼한 솜이불 두 개와 깨끗하게 정돈된 침대까지 내어주었다. 나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사한 마음에 속으로 무심코 감사의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늦은 밤, 홀로 남겨진 방 안에서 내가 창밖으로 내다본 티베트의 밤하늘은 세상 사람들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밝고 아름다운 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영롱한 밤하늘의 별빛은 세상의 모든 소란함을 잠잠히 만들어 버리는 그런 신비한 힘이 있었다. 내가 침대에 누워 창밖의 별빛을 즐기며 잠이 든 그 날은 나의 생애 처음으로 느껴본 고원의 고요함과 적막함에 파묻힌 깊은 밤이었지만, 어느 때보다도 따스하고 편안함을 느낀 밤이었다. 나는 속으로 앞으로의 여행길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그러던 사이 며칠간의 피로에 지친 나의 육체는 곤히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티베트 고원의 별빛이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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