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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lie 몰리 Oct 31. 2024

겁도 없이 미국에 와버렸다.

미국이 왜 좋은 거지?

Welcome to the U.S!

웰컴 투 아메리카!


6년간의 중국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우리는 미국에 와버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해외생활로 인해 웬만한 일에 대해 강심장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이런 마음가짐이면 어디서든 악착같이 버티며 잘 살 거라고 생각했다. '중국'이란 나라에서 평범하게 누구나 꿈꾸는 주재원 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도 일반적인 '한국 귀임'과는 조금 다른 노선을 타게 되었다. 주재원 가족생활을 하며 조금 다른 시선으로 몇 년간 우리 가족의 미래와 노후를 고민하며 어느 나라를 갈지, 어떤 비자가 가능한지, 몇 년 동안 알아보며 준비를 했다.


우리 가족은 내향적이면서도 동시에 활동적인 성향으로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여행을 다니고 활동을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대자연과 하나 되어 소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캐나다를 꿈꿨지만, 우리 나이에 또 시간상, 여건상 캐나다 비자를 따는 건 어려워 보였다. 물론 여러 방법이 있었지만, 단순한 내 머리에는 잘 입력이 되지 않는 복잡한 캐나다 비자는 알면 알수록 혼란스럽기만 했다.


말로 내뱉으면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아이가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향후 아이의 교육 문제를 고민했고,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복귀하는 문제에 대해서 남편이 가지고 있던 크고 작은 걸림돌들, 또 여느 남자들이 한 번씩 병이 걸린다는 사업병까지. 그럴 때마다 나의 해결책은 '그럼 우리가 준비해서 떠나면 되지. 나는 해외살이가 맞는 것 같아. 우리는 가고야 말 거야.' 이렇게 쉽게 내뱉은 말은 현실이 되었고, 몇 년간 비자 준비에 고군분투를 했다.



중국 주재원 생활이 끝나가는데도 결정되지 않았던 인터뷰 일자부터 우리의 다음 거처를 알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 갈 곳을 잃은 난파선처럼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비자 스케줄로 중국에서 외국인학교도 지원하고, 한국에 들어갈 집도 날짜를 맞춰야 했다. 누가 우리의 일정과 계획을 물어볼 때마다, "아직 몰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아는 게 없어."라고 말하는 순간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남편이 우리보다 3개월 먼저 한국으로 귀임을 했고, 그 사이 우리는 갑작스러운 비자 인터뷰 날짜를 통보받고 신체검사와 비자인터뷰를 위해 아이의 한국을 방문해야 했다. 아이의 수업 일수 때문에 밤비행기를 타고, 여권을 돌려받지 못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 마음 졸이던 일들이며, 그렇게 늘어지던 스케줄이 갑자기 당겨지는 바람에, 나와 아이가 한국에 들어가고 4일째 되던 날 우리는 곧 미국에 가야 함을 알게 되었고, 가야만 했기에 또다시 해외 이사 준비를 시작해야만 했다. 중국에서 해외 이삿짐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다시 또 짐을 싸야 하는 현실.


한국에서 1년 이상을 살 줄 알았기에 TV,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오븐 등의 가전부터 옷장, 침대, 소파까지 모두 새로 구입을 했었고, 짧게는 1달 사용, 길게는 2달 사용한 새 물건들을 헐값에 모두 처분해야 했다. 아이가 입학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외국인학교도 수백만 원의 입학금을 포기한 채 학비를 환불받아야 했고, 그렇게 잠시 머물렀던 한국에서의 1달 동안 중고거래와 해외 이사 준비, 미국 학교 입학, 미국 집 구하기 등 당시에도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모를 정도의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이미 돈이 여기저기서 줄줄 새고 구멍이 많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중국을 떠나고, 한국에서 1달 정도 머무른 뒤에 우리는 겁도 없이 덜컥, 미국 시골로 와버렸다. 계획도 없이, 와야만 하니 그냥 와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이 좋은 나라에 와있지만, 왜 미국이 좋은지 아직 모르겠다.  애국심이 가득한지 거리마다 꽂혀있는 대형 성조기들, 끝도 없이 펼쳐지는 땅, 대륙. 차 없이는 돌아다닐 수 없는 곳. 아마존에서 구입한 환불은 매번 홀푸드나 UPS에 갖다 줘야 하는 상황, 값비싼 생활비. 뭔가 쓸데없는데 시간 써야 할 일이 굉장히 많다는 게 현재까지의 느낌이다. 자유로움과 개성이 강하고, 시민의식이 투철하지만 아직은 좀 더 고급스러운 베이징 느낌이다.


무엇보다 독립적으로 오고 나니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그나마 근처에 지인이 없었다면, 주소조차 없는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미국. 미국이 왜 좋은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지금, 하고 있는 게 없는 지금이라 또 배 따뜻한 주재원 생활을 하다가 마치 바닥까지 추락한 기분이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언젠가는 행복해질 그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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