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려니 아쉬움
나와 아이는 남편을 따라 갑자기 중국 주재원으로 오게 되었다. 인생은 원래 예상하지 않았던 서프라이즈의 연속인 것 같다. 갑작스럽게 중국에 오게 된 주재원 생활 중 또 한 차례 인생의 최대 시련이었던 코로나 통제 정치를 직격으로 맞은 가족이다.
중국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던 초기, 지금도 맨날 '팅부동(나 못 알아들어요.)'를 외치며 해외살이 이방인으로 살고 있지만, 이제는 그래도 내가 살아온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나의 경험으로 조금은 알 것 같다.
주재원 가족으로 있어보니, 주재원이라는 게 회사의 부름대로 움직여야 하는 고무줄 근무라서, 주재 기간 동안 갑자기 한국에 들어가야 한다고 통보가 와서 가슴을 졸이며 다시 해외 이사를 준비했다가, 또 무마되기도 하고, 사는 내내 불안함을 갖고 살아야 하는 우대받는 위치에도 있는 동시에, 내면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생활인 것 같다.
이곳에 다사다난했던 중국에서의 가족 스토리를 기록하려고 한다. 일반적인 중국 주재원 와이프의 길을 걷지 않는, 나만의 길을 자처하여 고군분투하며 산 일상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여러 지역에서 서로 각자 다른 모양과 색깔을 지닌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는 모두 하나가 되어야 안전하다는 나한테는 맞지 않았던 주재원 와이프의 생활로 겉보기에는 외로운 생활을 했다. 중국에서 40이 넘어가면서 노화 과정도 맞이하고, 사느라 정신없다고 바빠서 내 몸 하나 돌보지 못했던 일들이 많았다.
여기는 공산주의다, 사회주의다! 를 제대로 체감했던 코로나 통제 정치로 아직도 우리에게 후유증이 있다면, 중국에 대해서 좋지 못한 기분이 남겨졌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살수록 좋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 우리 가족한테는 과거에 좋기도 했고, 답답하고 싫기도 한 애증의 나라다.
그런데 또, 막상 떠나려고 하니, 그렇게 한 동안 미워했던 나라가 지금은 또 아쉽기도 하다. 해외살이의 매력을 진하게 느낌과 동시에 물론 아이 있는 집에서의 최대 주재원의 혜택인 국제학교의 커리큘럼 때문이다. 우린 가족끼리 모이면, 아이를 향해서 이야기한다.
너는 회사가 키웠어, 참 고마워해야 해.
자비 부담도 있지만, 회사원 가족이 학비 비싸다고 소문난 중국 국제학교에 다니는 혜택을 거머쥐었으니 말이다.
주재원이 뭔지도 모르고 급하게 준비해서 왔던 중국 주재원,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 기간이 확정되지 않아서 감흥도 없던 한 치 앞도 모르는 귀임 결정이 얼마 전 '귀임 계획서'로 현실이 되었다. 마지막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있다 들어가길.
주재원 기간 동안 해프닝이나 가족의 해외살이 스토리를 적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