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듯...
제36 화
매일 밤 전화 통화를 하는 아들을 보면서 원희 부모님은 희경이 어떤 아이 인지 궁금증이 더해갔다.
그래서 아들 원희에게 희경을 빨리 데려와 보라고 하였다.
원희는 그 말을 듣고 몹시 기뻤다.
마침 오늘이 아버지 생신이라 데려오면 친척들도 다 만날 수 있으니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희경에게는 미리 말하지 않았다.
원희는 희경을 만나자마자 일어나라고 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희경은 당황했다.
"왜?"
"오늘 우리 집에 가자."
"이렇게 갑자기?"
"부모님이 너 데려오래 보고 싶다고"
"아무 준비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옷도 이런데..."
"괜찮아. 준비할 것 없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
"나만 믿고 따라와."
희경은 도무지 납득이 안 되었다.
어리둥절하고 몹시 당황스러웠다.
자신의 차림새를 훑어보았다.
짙은 갈색 바지에 연한 갈색 티셔츠... 썩 내키지 않은 차림새였다.
그렇지만 하는 수 없이 따라나섰다.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라 여기고 그러자고 하였다.
희경은 길거리 트럭에서 딸기를 파는 걸 보고 그 앞으로 다가갔다.
딸기를 보니 맛있어 보여 두 근을 샀다.
원희의 집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처음 와 본 동네였다.
산 아래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는 하늘 아래 달동네 같은 분위기였다.
골목마다 허름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런 동네였다.
원희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안방에 구멍가게가 딸려있었다.
자그마한 구멍가게는 원희의 집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희경은 먼저 원희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원희 아버님은 바싹 마른 몸에 숨을 가쁘게 쉬면서 쌕쌕 소리를 내셨다.
원희 어머님은 작은 키에 곱슬곱슬한 파마머리를 한 조금은 통통한 분이셨다.
희경은 원희 아버님을 뵙는 순간 어딘가 많이 아파 보여서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까지
하였지만 애써 침착하게 행동하였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하였다.
원희 부모님은 희경에게 특별히 묻거나 하지 않고 위아래로 훑어보시고 인사만 받을 뿐이었다.
인사를 마치자 원희는 희경에게 잠깐 일어나라고 하더니 바로 옆집으로 데리고 갔다.
옆집은 2층 양옥집이었는데 외가댁이라고 했다.
그 동네에서 제일 번듯한 집이었다.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왁자지껄 소리가 들려왔다.
거실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외갓집 친척들이었다.
원희는 희경을 간단히 소개했다.
희경은 허리를 구부려 구십 도로 인사를 했다.
사람들이 일제히 희경을 쳐다보았다.
희경은 쑥스러웠다.
아무도 말을 건네거나 묻는 것은 없었다.
원희는 소개가 끝나자 곧바로 희경을 데리고 나왔다.
그야말로 인사만 하고 나왔다.
원희는 뭐가 좋은지 연실 싱글벙글하였다.
희경은 마치 뭐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
밖으로 나오자 원희는 그제야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오늘은 아버지 생신이자 외할아버지 제사 그리고 자신의 생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부모님께서 궁합이 안 좋다는 이유로 희경과의 교제를 반대하셨으나 아들 원희가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희경을 좋아하자 한 번 만나보자 한 것이었다.
그래서 원희가 친척들한테 소개하고 어떤지 의견을 들어보자 한 것이었다.
그래야 자신의 뜻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마치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듯 인사를 하고 나왔다.
원희는 걸어가는 동안 희경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 이런 식으로 소개해서. 이렇게 해야 좀 더 빨리 허락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어."
그 순간엔 희경의 생각이나 의견 따위는 안중에 없는 듯했다.
희경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듣기만 하였다.
"나는 너랑 꼭 결혼을 하고 싶어. 믿어줘 진심이야."
희경은 그렇게 말하는 원희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희경은 곰곰이 생각을 하였다.
'집안은 화목한 것 같은데... 생활 수준도 크게 차이 나는 것 같지 않고... '
그 부분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원희는 부모님과 친척들 반응이 몹시 궁금하였다.
집에 오자마자 모두 모여있는 외가댁으로 올라갔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꽉 붙잡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원희 부모님도 그러라고 하셨다.
원희는 뛸 듯이 기뻤다.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으로 계단을 후다닥 뛰어 내려서 집으로 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희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나야 원희. 궁금하지?"
"응"
"모두 너 꽉 붙잡으래."
"그래?"
"응. 이제 됐어. 모두 허락했어."
"그래? 다행이네."
원희는 한껏 들떠있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희경은 전화를 끊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부모님께 언제쯤 소개를 해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원희는 아직 학생이고 군대도 가야 했다.
그래서 마음에 걸렸다.
부모님이 쉽게 허락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원희에 비해 형부는 체격도 좋고 군복무도 마쳤고,
부모님에게는 듬직한 맏사위였다.
형부 남규는 아직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볼 수가 없었다.
언니 희숙은 그 사이 둘째 정희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첫째 민혁도 훌쩍 컸다.
희숙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없이 지내고 있었다.
남편 남규가 많이 보고 싶고 그리웠다.
가끔 오는 편지를 읽으며 외로운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친정에서 분가한 이후로 자주 오지 않았기 때문에 희경이 가끔 한 번씩 언니집에 가서 조카들을 보고 왔다.
띵동~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희경은 밖을 내다보았다.
원희가 커다란 자루 하나를 둘러메고 대문 앞에 서 있었다.
힘겨운 모습이었다.
희경은 순간 놀랐다.
'무슨 일이지?'
후다닥 계단을 뛰어내려 가서 대문을 열었다.
원희는 무거운지 낑낑댔다.
희경은 황급히 현관문을 열었다.
원희는 메고 온 자루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
"후우~~~ "
"이게 뭐야?"
"쌀이야."
"웬 쌀을 가져왔어?"
"직접 농사지은 쌀이라 먹어 보라고 가져왔어."
말소리가 들리자 방에 계시던 희경 부모님이 거실로 나오셨다.
"누구냐?"
"내가 사귀고 있는 사람이야. 원희 씨"
"안녕하세요? 이 원희입니다."
희경 아버지는 뭔가 탐탁지 않은지 표정이 굳어졌다.
"일단 앉아요."
희경 어머니가 말을 건넸다.
희경은 얼른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타왔다.
원희는 갈색 소파 위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희경은 눈치를 살폈다.
원희는 커피를 마시면서 이리저리 집안을 살폈다.
방에 있던 희경의 동생들이 힐끔힐끔 원희를 쳐다보며 킥킥거렸다.
"군대는 다녀왔나?"
희경 아버지가 물었다.
"아뇨, 아직... "
원희는 말끝을 흐렸다.
"몇 살 인가?"
"희경이와 동갑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
희경 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쌀은 왜 가져왔오?"
"집에서 농사지은 거라 잡숴보시라고 가져왔습니다."
"고맙소 잘 묵겠오."
희경은 원희가 커피를 다 마시자 그만 나가자고 하였다.
갑작스레 찾아온 원희 때문에 당황스러웠지만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말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얼떨결에 부모님이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 여겼다.
마치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듯 서두르는 원희가 조금은 황당하고 엉뚱해 보였지만 오히려
그렇게 추진하는 원희가 달라 보였다.
원희가 돌아가자마자 희경 아버지가 이것저것 묻기 시작하였다.
희경의 예상을 적중이라도 하듯 아버지께서 반대를 하셨다.
결혼 상대로는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고 하셨다.
희경 어머니는 잠자코 듣고만 있을 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희경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하였다.
앞으로 어떻게 허락을 받아야 할지,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할지 지금으로서는 망막하였다.
한편 원희는 희경 부모님 반응이 어떤지 몹시 궁금하였다.
그런 원희에게 희경은 솔직하게 있는 사실 그대로 얘기해 주었다.
그러자 원희는 의외로 자신에게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였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예상이라도 한 듯이 태연하였다.
희경은 무슨 계획이 있는지 몰라도 쉽지 않을 거라 했다.
원희는 앞으로 당분간 데이트를 밖에서 하지 말고 희경의 집에서 하자고 하였다.
"그게 말이 돼?"
"나를 믿고 지켜봐 줘."
"무슨 생각인데?"
"으응... 아무튼 내가 하는 대로 지켜봐."
"아니 뭐... 생각하는 바가 있다고 하니 아무튼 알았어."
원희는 자신의 말대로 매일 같이 희경의 집으로 찾아왔다.
희경 부모님도 그런 원희를 박대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원희는 희경이 늦게 오자 희경의 남동생들과 얘기도 하고 공부도 가르쳐주었다.
희경 어머니는 가끔 직접 담근 술을 원희에게 주었고, 원희는 그걸 마시면서 희경을 기다리기도 하고
부모님 몰래 남동생에게 술을 먹였다.
남동생들은 원희를 좋아하고 잘 따랐다.
그렇게 한 달을 꼬박 다니면서 희경과의 교제를 허락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희경 아버지는 매일 한결 같이 행동하는 원희를 보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끈기가 있고 성실해 보이네.'
희경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는 둘이 만나거나 집에 오는 것을 극구 말리거나 반대하지는 않았다.
원희가 비록 왜소하고 마른 체형이지만 착해 보여서 좀 더 지켜보자 마음을 먹었다.
*다음 화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