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제 1화
1962년 12월 전라북도 조그마한 시골 마을
유난히 추운 겨울 불빛 하나 없는 거리,
칠흙 같은 밤 자정무렵 산통은 난산으로 이어져 사경을 헤매는 신음 소리와 함께,
응애응애 아기 울음 소리가 조용한 마을에 울려퍼졌다.
애기가 거꾸로 나오면서 하마터면 어머니를 잃을 뻔 하였다.
여자 아이 박희경.
태어날때부터 평범하지 않은 아이.
어머니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셨다.
그러나 완전 초죽음이 되셨다.
사경을 헤맨탓에 기력이 바닥 난 상태로 몸져누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희경은 세상 밖으로 나오느라 힘이 들었는지 쌔근거리며 자고 있다.
아침이 되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기력도 채 회복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밤새 만들어 놓은 두부 다라를 이고 팔러 나간다.
미역국 한그릇도 변변이 못먹고,
출산 후유증으로 다리를 질질끌며 장사길을 떠났다.
어머니는 가난이 원망스러웠다.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한탄을 하였다.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희경은 어머니께서 장사를 나가신 까닭에 젖을 못먹고 언니가 돌절구에 좁쌀을 갈아 만들어준 미음을 먹고
자랐다.
언니 희숙은 동생을 살뜰히 챙기고 업어 키웠다.
어린 아이가 아기를 돌봤다.
희숙은 어머니를 대신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식구들 빨래와 살림을 하느라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 말았다.
무척 똑똑했다.
공부도 잘했다.
그리고 예뻤다.
그럼에도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학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학교를 그만 두던날,
희숙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희숙의 나이 겨우 8살인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할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께서 모두 장사하러 나가시고, 일하러 나가시기 때문에 살림은 자연스레 희숙의 몫이 되었다.
원래 희경의 집은 종가집 종손으로 부잣집이었다.
그런데 외삼촌 권유로 운수업을 시작하였고,
시작한지 한달만에 고용했던 트럭 운전수가 인사사고를 내는 바람에 집안이 폭삭 망해버렸다.
그로인해 아버지께서는 남의집 머슴살이를 하기도 하고,
막노동을 다니시기도 하였다.
어머니도 행상을 하면서 근근히 살게되었다.
아버지는 집안 형제들에게 원망을 듣게 되었고,
어머니는 시동생을 비롯 5명의 시누이들에게 눈총을 받으며 고된 시집살이를 살게되었다.
물론 시어머니로부터 혹독한 시집살이를 해야했다.
결혼전 막내딸로 금지옥엽 자란 어머니는 외할머니께 딸을 며느리 삼게 달라는 할머니의 간절한 요청으로
시집을 오게되었다.
아버지 얼굴 한 번 못보고 결혼하고,
첫날밤에 처음 아버지 얼굴을 보게되었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었는데,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한순간에 운명이 뒤바뀌게 된것이다.
가난하여 생활이 어렵다보니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 일이 있을때 가서 도와주고 돈을 몇 푼 받거나,
바닷가에 가서 조개를 잡거나 물고기를 잡았다.
또한 무당이 굿을할때 도와주고 떡이며 음식을 얻어와 가족들에게 주었다.
어린 희경은 어머니가 일하는데 따라가서 구경을 하였다.
섬지방이다보니 쌀이 귀했다.
희숙이 보리쌀을 절구에 빻아 밥을 지었다.
그마저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먹어야했다.
매 끼니마다 미역, 파래, 조개, 생선을 번갈아 먹으며 살아야했다.
희숙은 희경을 데리고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산비탈을 밭으로 일궈 고구마를 심어 놓은 곳이다.
커다란 나무 그늘아래 앉아 파랗게 자란 고구마 잎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불렀다.
고구마밭 가운데 다래가 자라고 있었다.
희숙은 잘 익은 다래 하나따서 동생 희경에게 주었다.
엄지손가락만한 다래가 어찌나 맛있는지 희경은 자꾸 입맛을 다신다.
희경은 선착장에 배가 드나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해하였다.
마당에 동그란 멍석을 깔아 놓았는데 아무것도 널어 놓지 않았다.
우물옆 담장에는 듬성듬성 달래가 자라고 있었다.
꼭 난을 심어 놓은 듯 너무도 예뻤다.
동네엔 아이들도 많이 없었다.
희경은 같이 놀 친구도 없었다.
외톨이 마냥 매일 혼자 놀았다.
언니 희숙이 유일하게 같이 놀아주었는데 뒷동산에 올라가서 노래 불러주는 것이 전부였다.
희숙은 살림하느라 바빴다.
가끔은 산에 올라가 갈퀴로 떨어진 솔잎을 긁어모아 집으로 가져와 아궁이 땔감으로 썼다.
아궁이에서 불을 땔때면,
희경은 옆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을 했다.
희경의 나이가 다섯살이 될때까지 섬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며 생활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서울로 이사를 간다고 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희경은 마냥 신이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뿌우~~~뿌우~~~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그 곳 섬에서 멀어져 갔다.
* 다음화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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