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수치심

당신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마주해야 할 감정

by 엄마작가 선영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 부럽다. 그래서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실 어느 정도 난 매력적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날들도 있었다. 그래서 매력적인 척도 했었던 기억이 있다.


난 왜 매력적인 누군가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 사람에게 풍기는 매력이란 어디서 오고 풍기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 아니 살아 있거나 살아 있지 않거나 하는 물건에도 매력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매력적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이라고 사전에는 나와 있다. 정확한 의미를 알고 나니 내가 왜 더욱 매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매력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좋은 매력과 나쁜 매력이라는 것은? 질문을 해 놓고도 기분이 이상했다.



그대로 난,

매력 있는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나의 매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유년시절로 거스른다.

나는 예쁜 친구들을 좋아했다. 예쁘게 보이고도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꾸미려고 노력했고 내 본연의 것을 특별하게 생각하거나 사랑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을 척을 하고 사나보다.


왜 나는 본연의 모습이 당당하게 사랑하지 못했나?

왜 나의 모습을 바꾸려 애썼을까?


그 첫 번째 기억은 딸 셋이 쪼로록 목욕탕에 가던 어느 날이다. 탕을 왔다 갔다 하며 엄마의 주위를 맴돌던 나는 또래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긴 머리에 야리야리한 몸이었다.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에 기억인 것을 보면 5세 혹은 6세 즘이다. 나의 머리는 숏커트이고 나의 배는 동그랗게 통통했다. 그 아이들에겐 우유상자가 있었고, 매우 기세등등 여유로워 보였다.


나에게는 한 번도 우유상자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이 셋을 목욕탕에 데리고 가면서 슈퍼마켓 보다 비싼 우유를 사줄 이유가 없었던 거다.


그 시간 나는 그 아이들의 모든 것이 부러웠다. 우유상자는 갖은 아이들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종일 까르르 꺄르륵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주변에서 그 여유와 즐거움을 쭈볏쭈볏 부러움의 눈빛으로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있어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의미를 깨닫고 시작된 시발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누구도 나의 몸을 누군가와 비교당하지 않았던 어린 꼬마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감정이었다. 나는 그냥 혼자서 의식이 작아졌고 부러웠고, 의기소침하다. 그 작은 우유상자를 갖은 긴 머리 아이가 세상 모든 것을 다 갖은것처럼 부러웠다.


성장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나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많은 것들을 누리며 지냈지만, 그 기억은 4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쑥불쑥 떠오른다. 없이 살았던 그 시절 어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야속한 것에 대한 상처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어미를 탓하던 탓하지 않던, 어미의 텅 빈 가슴을 물려받은 딸은 그 어미의 몹쓸 감정까지 온전히 느껴야만 하니 더 그렇다.


그래서일까? 나는 유독 통통하고 동그란 배와 얼굴이 못마땅히 결국 살을 빼고 얼굴 성형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가지고 싶은 매력을 갖게 된지는 잘 모르겠다.

그 날의 나의 의식을 마주한다. 의기소침한 나를 바라본다. 눈빛에 힘이 없고 그늘지다.


그 아이에게 우유를 하나 건네주었다. 딸기우유 아니다. 초콜릿우유도 아니다. 난 유독 흰 우유를 좋아했다. 포얀 우유상자에 포근하게 매끄러운 우유 상자가 입에 닿는다. 하얀 콧수염이 그려지며 스믈스믈 입가로 흐르는 비릿한 고소함이 감돈다.



이제 나에게도 우유상자가 생겼다. 우유상자를 든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세상에 모든 것을 다 얻은 기분이다. 목욕탕에서 내가 대장이 된 기분이 든다. 묘한 감정이다. 내가 목욕탕에서 당당하지 못한 것이 비단 우유상자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아이에게 우유상자를 쥐어주니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곧 나는 눈치를 보지 않고 실컷 나의 세상 안에서 행복함을 자아낸다.


얼마나 오랜 시간 텅빈 마음 안에 무엇을 그리워하며 보냈을까?

물론 우유상자 하나가 나의 매력이라는 감정 전부를 보상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나의 감정에 한 조각을 바라봐 준 것뿐이다. 그러나 내가 초라하거나 쓸쓸해질 때 아마도 종종 우유상자를 생각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우유상자는 어미의 사랑이고 아이의 생명력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내 안에 매력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질문해 본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정말 가지고 싶은 것을 못 가져서 생명력의 부재가 오는 것은 아니다. 아마 나의 엄마가 내가 갖지 못한 우유상자에 대한 마음을 알아주었다면 난 그 목욕탕에서 그 아이들을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