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리정돈에 별관심이 없었다
나는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
나는 지저분한 편이었다
정리정돈 보다 그림 그리고,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많은데 청소할 시간에 더 읽고 쓰고 공부하는 것이 중요했다.
여러분의 정리습관은 어떠신가요?
머리로 '정리의 기술' 책을 읽는다.
'정리 중요하지' 하면서도, 나의 무의식은 정리를 안 하는 대신 그림을 더 그리고 책을 많이 읽으면 돼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정리정돈이라는 단어와 나의 집 나의 마음이 스치고 지날 때마다 바닥에 있는 나를 발견한다.
'더러움의 수치심'
2024년 겨울 친정집이다.
더러움의 수치심 그 시간과 내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엄마의 화장대
엄마의 화장대는 늘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엄마는 화장대에 앉을 시간이 없었고... 먼지는 쌓여갔다
이게 나의 집에 정리정돈의 첫 번째 기억이다.
단칸방 농 뒤에 먼지 떡
쑥쑥 자라 활동 범위가 커진 우리는 집 뒤에서 자주 놀게 되었다. 집 뒤는 음지라 여름동안에 주로 놀았는데, 방에 쪽문이 있었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켜켜이 쌓인 먼지 구더기 농 밑으로 쓸려온 잔재가 보였다.
어린 맘에 크게 놀랐다.
그리곤 상상했다 기다란 방을 농으로 막아 놓았으니 여기가 내가 잠자는 방에 뒷부분이라고??
그렇게 나의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5세 미안의 기억이 저장되었다.
책 탑
초등학교 저학년 방이 두 개인 집으로 이사를 갔고, 책상이 하나 있었다. 누구의 책상도 아닌 세 자매의 공동의 책상이다. 그 책상 위에는 늘 책이 쌓여 있었다.
엄마의 호된 잔소리가 있던 날 책상의 책탑을 열심히 고사리 손으로 정리했다. 한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탑은 다시 쌓여만 갔고, 나는 그날 정리에 대한 무기력을 습득했다. 치워도 치워도 다시 더러워지는 공식과 정리는 힘들다가 느껴져 저장된 거다.
선영이가 거실청소
10세가 지날 무렵 좀 더 넓은 집을 조립식으로 짓고 이사했다. 벽돌공장을 했던 부모님의 사업이 좀 커지면서 기사 아저씨들의 식사와 참을 엄마가 더 많이 해야 했다. 집은 아저씨들의 시멘트 먼지로 늘 서걱였고 둘째인 내가 거실청소를 하게 된다.
음... '왜?'
내가 둘째인데 언니가 안방 청소고 내가 가장 넓은 거실인거지? 그때부터 나는 청소를 식당바닥 청소하듯 대충하기 시작했다. 미친년 널뛰듯 한다. 구랭이 담 넘어가듯이 한다고 엄마가 표현했고 난 걸레에 물을 한가득 담아 슥슥 물을 바르는 청소기 역할을 한 거다. 이것이 나의 청소에 대한 관념으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초등학교 3학년에 시작된 청소습관이 나의 삶을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나쁜 것이 있으면 좋은 것이 있다고 시간이 지나자 기사 아저씨들은 선영이가 가장 착하다고 난 그 칭찬을 먹으면서 대충대충 성실히 청소를 했다. 그 시절 인정받고자 했던 욕구가 강하게 성장했다.
포근한 지저분함
고등학생 때이다. 매시간 바뀌는 과목의 책을 넣고 빼는 것도 귀찮아서, 전 시간 책을 깔고 위에 책을 올리고 수업하다가 선생님께 혼이 날뻔했다. 다행히 옆친구들이 원래 선영인 그런다고 말해 주어서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그 시절에 책들에서 느낀 감정은 포근함이었다. 17년 동안 먼지와 지저분함은 놀랍게도 나에게 포근함이 되어 주었던 거다. 난 정리정돈에 대한 불편함을 누르며 성장했고, 그 대신 최선을 다해 일을 하면 정리 따윈 못해도 상관없다고 결론지었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행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믿었다.
그런데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엄마와 닮은 삶이었다. 한 길만 바라보고 쉼 없이 정진하는 나라고 생각했던 모습이 집착으로 하루도 문을 닫지 않고 식당을 운영하던 엄마의 고집스러운 모습이었다.
나와 엄마를 보며 내가 엄마가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놓은 삶을 보았다. 나는 열심히 엄마의 삶을 쫓고 있었나 보다. 일을 위해, 돈을 벌기위해 가족의 깨끗한 편안함은 생각하지 못했다.
2020년 이사를 했다.
그때부터 나에게 눈을 뜨면서 귀에 들리는 말이 있었다
"정리해야지!"
신기하게도 누군가 귀에 대고 계속 이야기해주는 듯했다.
페인트를 다시 칠하고, 책을 기증하고, 선물하고, 버리고, 팔았다. 서랍들의 정리법을 공부했고, 화장실 청소에 대해 배웠다. 환기법, 화분 관리의 정의를 다시 익히고 아이들에게 정리의 의미와 습관에 대해 보여주었다. 각종 독촉 고지서를 확인하고 관공서에 사유와 해결책을 지시받아 정리 중이다.
(전업주부인 난 아빠의 식당 명의자로 20년간 신랑과 분리된 세금을 내야 했다. 물건이 정리정돈 되지 않는 사람은 돈 문서나 관계에 있어서도 정리가 안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부모와 비롯된 모든 것을 정리정동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부모님께 물려받기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어 간다.)
내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무지를 인정하고 변화된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깨끗한 정리 습관을 익힐 수 있게 보여주기로 한다.
다시 봄이 돌아왔다.
페인트 칠할 곳과 색을 계획하고, 화장실 타일부터 싱크대, 냉장고도 좀 더 깨끗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청소력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정리와 돈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늘 그렇듯 책과 현실은 차이가 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몸으로 이해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정리습관과 부자습관, 행복습관은 뗄레야 뗄 수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간다.
나의 무의식이 이정도로 얽히고 설켜있음을 하나씩 알아 갈때마다 마음에 묶여있던 짐덩이들이 하나씩 풀려나가는 기분이다.
아름다운 창의력은 깨끗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었다. 정리의 조화 끝에 예술이 있음을 저 밑에 어딘가에서 일렁이는 감정이 만져졌다. 고요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마음까지도 느껴지는 듯하다.
다음은 나의 돈에 대한 무의식과의 만남을 펼쳐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