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엄마 딸
어느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아직도 그렇게 미워?
할머니가 술을 그렇게 좋아해서
술만 마시면 울었단다.
아빠가 막내라 엄마가 할머니와 산 시절은
불과 1~2년인이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도왔지 남에게 해꼬지 할 엄마도 아니다.
그럼에도 엄마는 무슨 말만하면 돌아가신 할머니 흉을 그렇게 본다.
여전히 미워할 일인가! 해서 물었다.
술 마시고 울었다고? 단순히 그 정도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렇게 밉다고? 그 이유로 3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할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미워한다고?
그게 다냐?
울기만 하면 할머니는 아빠가 불쌍하다고 했단다.
이유인 즉, 딸만 셋 낳고 아들을 못 낳아서
불쌍하다고 울었단다.
결국 엄마는 양수검사를 하고
두 번의 시절을 지나고서야
나와 10살 차이 아들을 낳았다.
ㆍㆍㆍ
듣는데 나도 화가 나더라. 어느 시대의 말씀인고
그런 엄마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위로를 해줘야 하는데 내 입에서 나간 말은
"그렇게 힘들게 아들 낳아서, 아들한테 사랑받고 아주 잘 살고 계시잖아. 아들 결혼 시켰으니 며느리랑 알콩달콩 잘 살아봐" 하며 비꼬는 말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아들 낳아서 아주 호강하면서 살잖아. 좋겠네 엄마는.
아들이 바쁠까 봐서 전화 한 통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엄마의 속을 긁어 댔다. 이게 나의 진심이었다. 질투다. 엄마의 아들 사랑을 시기하며 '잘 되나 봐라'하고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거다.
실제 그 아들은 생각지도 못한 일들로 우회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잔인하게도 엄마는 결혼 전 남동생을 위해 모으고 있던 곗돈마저 사기당했다. 억울함도 분노도 터뜨릴 수 없게 계주가 자살을 했으니 엄마의 찢어지는 가슴은 누가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대체 이런 일들이 왜 생기는지 알 수가 없고 억울함만 더해지고 있었다.
엄마의 집착이다. 엄마가 이루고자한 아들을 낳기 위한 집착이 만들어 놓은 잔재이다.
그 아들 살리려면 그 간의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빈 몸덩어리로 흐르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아들도 딸들도 자유로워진다고 말이다. 이게 엄마에게 말하는 딸년의 위로였다.
엄마가 집착하고 애를 쓰며 살수록 자식들도 집착으로 애를 쓰며 사는 거다. 여자는 엄마의 팔자를 닮는다는 말은 미신이 아닌 과학과 같은 공식이다.
실제로 우리 집 4남매는 하루하루 애를 쓰며 산다. 뭐 하나 순탄하지 못했다. 엄마와 많이 다르지 않은 삶이다. 집안일 보다 돈을 벌어 먹고살기 바쁜 삶을 산다.
시집살이를 하는 나를 비롯하여 두 딸은 시가와 가깝게 살고 아들은 처가와 가까운 곳에 신혼집을 차렸다. 이게 삶을 집착으로 사는 이에게 빗어지는 진실임을 시간이 지날수록 체감한다.
나의 삶은 부모로부터 물려받고 조작되었다. 그 조작됨이 나라고 믿고 적응하며 살게 된다.
지난날에 부모들이 다 그렇게 살았다지만, 그 삶을 고스란히 물려받느냐 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자 나의 내면 아이와 교감을 하기로 했다. 나의 유전자를 알고 나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내 마음을 애도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래서 물었다. '엄마의 엄마에 대해'
종종 엄마와 시간 여행을 하며 엄마의 유년을 회상해 주기도 하고 엄마의 설움, 분노도 긴숨을 쉬며 공감해 주기도 했다. 켜켜이 쌓인 엄마의 응어리들이 하나씩 하나씩 더듬어 주었다.
혹시 살면서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로 고통받는 일들이 지속되거나, 끊임없이 원가정의 문제들로 뒤엉켜 벗어나고 싶다면 당신의 내면아이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 보길 바란다. 자신도 모르는 일들로 삶에 방향성을 잃었다면 나의 존재가 어느 시점에서 시작되어 어느 위치에 머물러 있는지 질문해 보자. 그리고 나의 위로받고 축복받지 못한 날들을 위로하고 축복해 주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내 경우 엄마가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보낸 세월이 길었으니, 많은 수모에 길들여진 며느리라는 존재가 갖는 피할 수 없는 잔재를 모두 가슴에 묻고 살았다. 나의 외할머니는 딸만 여섯이었고 실재로 외할아버지가 씨받이를 시도했었다고 한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받았던 수치까지 함께 감당해야했다.
그 수치와 수모는 아들을 낳았음에도 고스란히 유전되어 몸 속 어딘가에 머물다 발짝 하는 거다.
나에게 새겨진 엄마의 아들 사랑은 엄마에게 위로의 말을 한마디로 해 줄 수 없게 했다.
엄마 역시 아들을 낳아야 든든하다고,
여자로서 우월하다고 당신의 뇌를 세뇌시켰다.
할머니 혹은 전통문화에 세뇌당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와 비슷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문득 아들의 지독한 집착과 사랑이
무얼까 생각해 보았다
아들을 낳은 엄마의
수치스럽고 고된 날도
비누거품처럼 홀연 흩어졌다고
생각했다.
마치 대한민국이 독립을 한 것처럼...
그러나 가슴에 맺힌 엄마의 한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30년이 다 되어도 풀리지 않았다.
83세의 아빠는 대가 끊긴다고 결혼한 남동생에게
아들을 빨리 낳아야 한다고 했다.
세 딸에게서 낳은 6명의 손주와는 다른 거다.
그 유전자의 족쇄는 아직 풀리지 않은 채로
묶여 있었다.
그렇게 나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를
바라본다.
내가 왜 엄마에게 할머니가 밉냐고 물었는지 그 질문을 가슴 깊이 끌어 당겼다.
보기만 해도 밉고 하루 종일 미워서 죽겠을 정도로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나를
더 이상 이대로 놓아 둘수 없어서
이제 내가 나의 삶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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