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 나는 내면아이와 교감하기로 했다

불안이라는 마음을 찾기 위한 여정

by 엄마작가 선영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뭔가 하루 종일 한 것 같긴 하데 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하고 말합니다.


수험생의 일상이 계속되자 아이는 시험기간마다 불안하다는 말로 엄마의 눈빛을 멈춰세웁니다. 저 역시 안타깝고 아이가 힘들어할 때마다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아이의 힘든 감정을 받아 주려하였습니다.


괜찮아! 실수해도... 시험 좀 못 봐도 괜찮아!

공부가 전부는 아니야. 충분히 잘하고 있어. 우리 딸 잘하고 있어.


공부하느라 애쓴다고 무조건 함께 힘을 낼 수 있도록 응원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인가 딸아이의 불안이라는 감정이 나에게까지 이입되었습니다.

어쩌면 나의 불안을 딸아이가 비춰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길을 가다 노점상 어르신들을 보면 생활고를 해결하시기 위해 나오셨을 텐데 여기까지 이 짐보따리를 들고 어떻게 나오셨을까? 추우면 날이 추워서 안쓰럽고 더우면 더워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자신의 몸도 못 추스를 것 같은 노인도 제 목숨을 책임지기 위해 돈벌이를 하시러 나오셨는데, 젊은 내가 그림 나부랭이나 그린답시고 집구석에만 있으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일을 그렇게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며 붓을 들고 있는 내가 쓸모없게 느껴지는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는 세상에 어떤 일을 하려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림이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그림으로 어떻게 세상에 도움을 줄 수을 있을까?

아마도 나의 존재의 의미를 찾고 싶었나 봅니다.

언제까지 삶을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의존적으로 살 것인가?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가족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과 불안이 시작되었습니다.

청소를 하면서도 밥을 하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불안이라는 감정이 휘몰아치고 종일 서성거리는 듯합니다.


불안해하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내 삶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구나.

내 그림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었구나

무언가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이 불가능할지 몰라서 오는 불안이었습니다.


딸아이에게 거짓을 말하는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의 불안이 무엇인지 알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적어도 딸아이의 불안이 정당하지만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함께 배워나가길 바랐습니다.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내 삶을 안전하게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감정이었습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크기에 따라 불안의 크기도 결정됩니다. 아이의 불안의 크기만큼 바라는 욕구가 컸던 모양입니다. 모든 불안은 당연히 넘을 수 있는 장애물이라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불안해하는 것일까?

불안은 결국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마음이 만들어낸 감정이었습니다. 불안이라는 감정에 대해 질문하니 불안의 실체와 마주쳤습니다.


그러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불안을 느끼지 않겠다는 저항이 되어 저 역시 불안해했었나 봅니다.

괜찮은 거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결국 내 마음에서는 불안에 대한 저항을 정말 크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나의 불안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더 깊은 곳에서부터 살펴보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어떻게 애착을 형성하고 교감하였을까?


아쉽지만 애착인형은 기억에 없습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감정이 자유롭게 허용되거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님처럼 느껴진 경험은 없지만,

다정했던 순간은 묘연하게 떠올려 봅니다.


나무마루 틈으로 내려다보는 마루에 신비로움

처마에서 떨어지는 찰랑거리는 빗방울과 진흙놀이

마당에 샘과 대문을 열고 나가면 펼쳐지는 들에 신비로움이 내 감정 어느 사이에 뒤엉켜 존재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집은 포근하고 아늑한 안식처나 보금자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집에 대한 애착이 덜 했나 봅니다.

그럼에도 아이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딸아이의 불안에서 비롯된 엄마의 불안에 대한 실체를 하나씩 밝혀 보기로 합니다.


큰 호흡이 가슴팍으로 밀려듭니다.


과연 나의 불안은 어디에서 비롯되어 연결되고 있는 것일까?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나의 엄마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엄마의 마음은 대부분 애가 타들어가고,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피가 까꾸로 쏟는 것 같다고 엄마에게 들은 말을 옮깁니다. 엄마의 말을 듣고 자란 내 기억이 순식간에 찾아서 알려줍니다.


내 감정에게 묻습니다. 선영! 너의 마음의 상태는 어떠니? 글쎄 나와의 교감 글들이 쌓여 어는 순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자연스레 밝혀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년시절 집을 떠올리니 집은 몸을 보관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끓어오르는 냄비처럼 과도한 일로 폭탄처럼 화를 뿜어댔습니다. 엄마는 늘 남들은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데... 하는 잔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알게 모르게 나는 이 사실을 사랑의 부재라는 감정으로 채워낸 모양입니다.


나는 언니를 따라 늘 집 밖으로 나다녔습니다.

이건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논리입니다.

아이들은 편하게 안전한 공간을 찾아 놀 궁리를 합니다. 아이에게 놀 궁리는 살 궁리입니다.



늘 마음은 든든한 지지자 없이 혼자였나 봅니다. 혼자 외롭고 나약하게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습니다. 두려웠을까?

아니 기억엔 두려움을 버린 채 무조건 저항하며 부딪히고 안되면 될 때까지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정말 안될 것 같으면 그냥 포기가 아닌 안 되는 마음을 가슴 한편에 앙금으로 쌓아둔 모양입니다.


무언가 해결되지 않은 마음이 남아 있음이 만져집니다.


나에게 지지자가 필요한가? 나에게 용기를 줄 무언가가 필요한가?

그래서 불안을 가슴에 안고 있나? 믿고 기댈 누군가가 부모라면 이보다 덜 불안했을까?

우리 아이는 나의 인자를 물려받아 불안한 건가? 엄마와의 대화로 아이가 더 안정이 되었을까?

일단 불안이라는 실체에 문을 두드립니다.


지난 시간 아이에게 했던 불안해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 이 말이 나에게도 필요한 말이었나 봅니다.

엄마의 품에서 얼마든지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을 나 역시 듣고 싶었나 봅니다.


내가 나를 믿어야 나의 신념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을 머리로 감정으로 고집으로 끌어올리는 연습을 반복했나 봅니다.

나를 알고 나와 교감하는 시간을 몇 번이고 반복합니다. 내가 느끼지 못하고 지나온 시간 동안 비워두었던 나의 마음을 지그시 감싸 안아줍니다.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 너의 성실히 살아가는 마음을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