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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18. 2022

나도 누군가의 <종간나 세끼>가 되고 싶다



인터넷에서 이런 유머글을 보았다. 삼시세끼 집에서 밥을 먹고 종종 간식까지 챙겨 먹는 남편을 '종간나세끼' 라고 부른다는. 그 글을 읽었을 땐 푸하하 하고 웃었던 것 같은데, 막상 '종간나세끼' 두 명과 함께하고 있자니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올해 8세, 5세가 되는 아이들이 방학을 맞이했다. 이 트리오는 이름처럼 삼시 세 끼와 종종 간식까지 따박 따박 챙겨 먹고 내게 엔터테인먼트 요소까지 요구한다. 내가 절대 이겨서는 안 되는 팽이 대결과 티타임에 초대된 이웃나라 공주 코스프레, 거기다 인간도 아닌 피카추 흉내까지. 


 삐까삐까- 내게 허락된 유일한 대사를 던지고 그대로 거실에 누워버렸다. 큰 아이가 큰 소리로 나를 부르며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 한다. 

"엄마!! 피카추는 안 죽는다니까~~"

난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피카추가 된 듯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엄마는 늙은 피카추라서 죽어.. 죽을 수 있어..."

아이는 내 말에 동요하지 않는다. 팔을 붙들고 일어나라 아우성이다. 상체를 일으켜 앉아 아이를 바라보았다.  

"....원상아.. 엄마는.. 너무 재미가 없어.."


정말로 너무나 재미가 없다. 체력은 둘째치고 유치하고 재미없고 흥이 안 난다. 빈 커피잔을 부딪치며 차를 마시는 흉내를 내는 일도, 개구리 자세를 하고 있지도 않는 악당을 향해 삐까삐까를 외치는 일도.. 너무 현타가 온다. 그래서 힘들다. 재미가 없어서. 아이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고선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내 코앞까지 다가와 말한다. 


"그럼 엄마가 지우 해!!"


...삐..까..... 난 다시 죽은 척 누워버렸다.      


처음엔 계획도 세웠다. 그동안 축척된 육아 경험으로 아이들과 밖에 나가는 건 힘들지만 집에 있는 건 더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전시회도 가고 날이 좋으면 공원도 가고, 밖에서 너희들의 온 힘을 탈탈 털어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5천 명이 넘어 전혀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아 포기했다. 나보다 일찍 육아를 시작한 친구는 엄마랑 놀아달라는 것도 다 한 때라며 즐기라 했지만, 즐겨보려 해도 맥주도, 노래도, 시댁 흉도 아무것도 없다. 


나도 누군가의 '종간나세끼' 가 되고 싶다. 대신 나는 잘 놀아줄 자신 있는데. 노래도 불러주고 맥주도 같이 마셔주고 무슨 이야기든 잘 들어줄 자신 있는데. 아, 어른과 놀고 싶다. 나도 종간나세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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