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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걸어요 <너에게 가는 길>

<너에게 가는 길> 영화 리뷰

by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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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쯤이었을까, 좋아하는 작가의 트위터에 영화 감상평이 하나 올라왔다. “<너에게 가는 길>은 퀴어 영화이자, 여성 영화이며 성장 영화이다.” 좋아하는 작가가 좋다고 하니 자세한 내용은 검색해보지 않고 무작정 예매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관으로 들어갔지만, 나올 때 내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성소수자도, 성소수자의 가족도 아닌 나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나왔을까. 무엇이 나를 그토록 눈물 나게 했던 걸까.


<너에게 가는 길>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퀴어 영화이다. FTM 트랜지션 과정 중에 있는 아들을 둔 34년차 소방공무원 나비와 동성애자 아들을 둔 27년차 항공승무원 비비안이 주인공이다. 지금까지 봐왔던 퀴어 영화에선 당사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는데 <너에게 가는 길>의 주인공은 당사자가 아닌 가족, 특히 엄마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문득 생각해보니 한 번도 그들의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퀴어 축제 반대 시위자들과 충돌을 겪는 뉴스를 볼 때, 안타깝다. 안쓰럽다. 정도의 납작한 생각만 했을 뿐, 정작 저 축제의 당사자,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리려고 나온 그들의 가족들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비와 비비안은 어느 날 자녀들의 커밍아웃을 마주하게 된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고, 아이를 미워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아이들이 그동안 살아왔던 세계에 기꺼이 몸을 던졌다. 인천 퀴어 축제가 있던 날. 비비안과 나비는 아이와 함께 참가했지만, 축제를 반대하는 시위자들에 의해 축제는 무산되었다. 나비는 “집으로 돌아가라” 외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내 아이가 살아가던 세상이 이런 모습이었구나. 나는 투사가 되어야겠다. 라고.


이 장면에서 나는 참 많이 울었다. 나 역시 엄마였기에 그 마음이 더 깊게 전달 되었다. 내 아이가 살았던 곳이 지옥이었음을 알았을 때. 누군가에게 혐오의 대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내 품에 안겨 우는 아이를 안아주는 것밖에 할 수 없을 때. 그런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질 것 같다.


‘엄마는 위대하다’ 말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비안과 나비는 위대했다. 사람들의 무관심, 냉랭한 시선, 찌푸린 얼굴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나비의 말처럼 투사가 되어 더욱더 세상에 아이들의 존재를 알렸다. 같은 성소수자를 둔 부모들의 모임에 나가 함께 연대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힘을 보태기 위해 마이크를 들고 가장 맨 앞에 섰다. 아이의 성별 정정 신청을 위해 함께 법정에 들어가고, 아들의 동성 애인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다.


영화는 이 모든 모습을 보여주었다. 성소수자 부모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힘이 되는지. 그들을 마주한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날이 서 있는지. 캐나다 퀴어 축제에서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했다. ‘남자와 남자는 결혼 못 해.’라고 말하던 내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으며 결코 누군가의 호,불호가 될 수 없음을 알았으면 한다. 내 아이가 사람을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성소수자인 ‘너’에게 그리고 그들의 가족인 ‘너’에게 나 역시 한 걸음 다가가고 싶다.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시스젠더(Cisgender)**

주민등록상에 표시되어 있는 성별이 자신이 인지하는 성과 일치하는 상태. 시스젠더(Cisgender)와 남성, 혹은 여성을 합쳐 시스 남성, 시스 여성 등으로 부르기도 함.

트랜스젠더, 젠더퀴어와 대치되는 의미.


**트랜스젠더(Transgender)**

태어날 때 법적으로 부여 받은 성별이 스스로 인지하는 성과 다를 경우를 의미. 수술 여부와 상관없이 본인을 트랜스젠더라고 지칭할 수 있다.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성으로 본인을 느낄 경우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본인을 여성으로 느낄 경우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라고 함.


**이성애자(Heterosexual)**

헤테로섹슈얼. 보통 줄여서 ‘헤테로’라고 함. 본인이 남성일 경우 여성만을, 여성일 경우 남성만을 성애의 대상으로 느끼는 사람들을 모두 헤테로라고 부른다.


**동성애자(Homosexual)**

자신과 같은 성을 가진 이들을 성애의 대상으로 느끼는 사람들을 호모섹슈얼이라고 한다.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인 레즈비언, 남성을 사랑하는 남성인 게이 등이 해당 됨. 하지만 주의할 점! 예전부터 비하의 의미로 오래 사용되었기 때문에 헤테로와 달리 이들을 ‘호모’ 등으로 줄여 부르지 않음.


**양성애자(Bisexual)**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성적 지향. 또는 자신의 젠더와 다른 젠더, 두 가지 이상의 젠더에 성적 끌림을 느끼는 것을 뜻함. '바이' 등으로 줄여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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