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헤어짐이 시작되던 날, 그날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와 아이가 헤어지는 날에 드라마에선 짜장면과 탕수육을 실컷 먹는 장면이 나오곤 하던데, 내가 기억하는 것은 짜장면과 탕수육 대신 빨간 작은 꽃이 촘촘히 박힌 나의 검정 원피스뿐이다. 무슨 일로 이런 원피스를 다 입었나 싶어 방안을 하염없이 빙빙 돌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돌면 돌수록 치맛자락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흰색 스타킹에 처음 신어 본 분홍색 구두를 바라보며 우리 진짜 좋은 데 가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 신발이 데려다준 곳은 내겐 너무 낯선 친할머니의 집이었다. 할머니 집은 방 세 개, 화장실이 하나인 평범한 다세대 주택이었지만, 당시 가게 안에 딸린 방에서 생활하던 내겐 그곳이 너무나 생소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와 이모는 철물점 가게를 운영했다. 운영이라는 말이 거창할 정도로 철물점 내부는 손바닥만큼 작고 드나드는 손님도 몇 없었지만, 그 철물점 가게 안에 붙어있던 방 한 칸이 엄마와 나의 보금자리였다. 한 열 평은 될까 싶은 그 공간에 엄마와 나, 이모네 세 식구가 함께 살았다. 어떻게 다섯 명이 그곳에 살았는지 아직도 미스터리하다.
그 미스터리한 공간에서 엄마는 아빠 없이 나를 2년간 홀로 키웠다. 창고 손잡이로 쓰일 법한 쇠붙이들과 못, 나사들이 뒤엉켜 가게 양옆에 누워있었고, 벽면을 가득 채운 망치와 톱 같은 차갑고 날카로운 것들이 아빠를 대신해 우리 모녀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이모는 방문 앞에서 서로를 곁에 두고 열심히 미싱 페달을 밟았다. 시끄러운 미싱 소리 때문에 엄마를 부를 때면 언제나 목청을 높여 엄마! 엄!! 마!! 하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한참 뒤에야 나를 돌아봤다.
나를 돌아보던 엄마의 얼굴은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미싱 앞에 앉아있던 서른도 안 된 엄마의 등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남겨진 삶의 무게와 나에 대한 책임감으로 눌린 굽은 등. 드르륵- 드르륵- 엄마는 가난을 피해 열심히 미싱 페달을 밟았지만 나아가는 건 천 쪼가리일 뿐 가난은 우리를 훨씬 앞서 기다렸다.
엄마는 한참 동안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어른들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나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르고 결국엔 집에 가자고 엄마를 채근했다. 엄마는 집에서 가져온 갈색 체크무늬 짐 가방을 그대로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에서 구두를 신는 내게 엄마는 볼일이 있어 열 밤만 자고 올 테니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어라- 하며 혼자 현관문을 나섰다. 순간 이곳에 홀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닫혀가는 문을 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빨간 돼지 저금통을 흔들며 나의 시선을 끌기 위해 애쓰셨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닫히는 문틈 사이로 보이는 엄마의 얼굴뿐이었다. 엄마가 날 두고 영영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보다 이 낯선 환경에 홀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 상황에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문을 사이에 두고 한참 실랑이하다 엄마는 하는 수 없이 눈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 된 나를 다시 집으로 데려갔다. 집으로 가는 길, 생전 잘 타지 않는 택시를 타서 그런지 멀미를 심하게 했다. 기사님이 좌회전, 우회전 깜빡이를 켤 때마다 '딸깍딸깍'하는 깜빡이 소리가 꼭 자동차가 껌 씹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얼마나 갔을까. 의자에 반쯤 걸터앉은 채 창밖을 보다 엄마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엄마는 울고 있었다. 창밖에 고가 도로가 보이고 자동차는 딸깍딸깍- 쉴 새 없이 껌을 씹는 와중에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낯설어 왜 우느냐고 물어보지도 못하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가끔 누군가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애를 버릴 수 있냐고, 참 독한 여자라고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마다, 나는 택시 안에서 울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만이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 여섯 살의 나보다 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눈물을 토해내던 엄마의 모습에 그때의 나는 본능적으로 지금이 평생 잊지 말아야 하는 순간임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내게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다시 그 택시를 타고 싶다. 창밖에 고가 도로가 보이고 자동차 껌 씹는 소리가 울려 대던 그 택시 안에서 나는 엄마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다.
-
<엄마와 완벽하게 헤어지기> 책은 하단 링크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8337857&start=sl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