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에 담긴 의미

by 여름

갑자기 바뀐 환경 탓에 모든 것이 낯설었던 나는 할머니가 보낸 유치원에서도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동네에서 얼굴을 튼 몇몇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보냈다. 다닌 지 한 달쯤 되었을까. 말도 몇 번 섞어 본 적 없는 같은 반 아이가 나만 보면 ‘어휴 냄새..’하며 눈을 흘기기 시작했다. 미끄럼틀을 타러 그 아이 뒤에 서거나, 점심을 먹으려고 옆자리에 앉았을 때, 옆에 나란히 서서 졸업 사진을 찍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아이는 노골적으로 눈을 흘기며 자기 코를 움켜쥐었다.


지금의 나 같았으면 ‘그 냄새.. 네 인중 냄새거든!’하고 한마디 했었겠지만 나는 그 아이의 그림자에 눈만 흘길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진짜 냄새가 나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할머니는 육십이 다 된 나이에도 날마다 나를 씻겼다. 초록색 때밀이 타월만 보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목욕이 끝나고 나면 할머니의 손길에 등과 목 겨드랑이가 벌겋게 달아오르곤 했다. 워낙 깔끔한 분이라 매일 목욕은 물론이고 세탁기도 하루에 한 번 이상 돌리셨다. 늘 방에 시선을 두면 걸레로 바닥을 훔치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의 손길에 내 몸엔 냄새가 날 틈이 없었지만, 엄마 없는 딸들은 그 부재가 쉽게 티가 났다. 곱게 땋은 머리와 알록달록한 원피스 대신 대충 빗으로 쓸어 넘긴 머리와 입고 벗기 쉬운 운동복 같은 것들에서.


어쩌면 그 아이는 엄마 손길이 묻어있지 않은 나에게서 엄마 없는 냄새를 맡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짜 냄새가 나든 안 나든 그 아이에게 난 그저 냄새나는 아이가 되어야 했다. 엄마가 없었으니까. 어린아이라고 해도 그중엔 유독 눈치가 빠른 아이들이 있었고, 타인의 슬픔이나 아픔을 알게 되더라도 배려하는 법을 몰랐다.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을까, 평소 친하게 지냈던 한 아이가 저녁 무렵에 우리 집에 찾아왔다. 집에 들어오지 않고 현관 앞에서 잠시 쭈뼛거리더니 등에 숨겼던 것을 불쑥 내밀었다. 그 애가 내민 것은 생뚱맞게도 수건이었다. 이미 우리 집 화장실 선반에 차고 넘치는 수건. 아무개 회갑 잔치 또는 무슨 조기 축구회 일동 같은 수건 끝자락에 알 수 없는 출처들이 쓰여 있는,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건. 학교에서도 아니고, 저녁 시간에 일부러 우리 집까지 찾아와 전해 줄 만큼 이 수건에 뭔가 깊은 뜻이 있는 것일까? 한참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그 아이의 말에 내 뒤통수가 얼떨떨했다.


“이거 우리 엄마가 너 가져다주래. 불쌍한 사람들 돕고 지내는 거라고 했어.”


이 수건의 깊은 뜻이 이것이었구나. 수건이라면 우리 집에도 차고 넘치는데. 나의 상황은 안중에도 없이 나는 불쌍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는 수건 한 장도 나눠 쓰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하는 것. 수건이 없어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누구에게도 수건을 구걸한 적이 없었는데 왜 난 네게 수건을 나눠 써야 하는 불쌍한 사람이 된 걸까. 나는 아무런 대꾸 없이 친구가 건네는 수건을 받아 들었다. 손에 감기는 수건의 무게가 실제보다 묵직하게 느껴졌다.


“고마워.”


나의 탐탁지 않은 대답에 친구는 우물쭈물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거실 바닥에 수건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마음속에 일렁이는 기분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몰라 그냥 울어버렸다. 할머니가 놀란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울기만 했다. 마음속 소용돌이는 눈물로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동정심’이라는 단어를 알기도 전에 그 단어가 내뿜는 서늘한 기운을 먼저 알게 된 하루였다.


내게 화가 나서 나를 따돌리고 싶은 순간이 생기면 일부러 엄마, 아빠 이야기를 꺼내는 아이도 있었다. 느닷없이 어제 엄마가 옷을 사주었다 하더니 또 갑자기 자기 아빠 월급은 얼마인데 다들 아빠 월급이 얼마 정도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다들 잘 알지도 못하는 아빠의 월급을 입에 올릴 때 난 혼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아빠, 엄마에 대해선 어떤 말도 할 수 없던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 아이의 눈빛이 날이 바짝 선 불꽃같았다. 차라리 욕이나, 엄마 아빠도 없는 게-하면서 한 소리를 듣는 편이 나 역시 속이 시원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교묘하게 상대방을 무안하고 창피하게 만드는 비겁한 행동이 어린아이의 순진한 표정을 하고 나타날 때면 나는 그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기가 힘들어, 자꾸 고개를 숙였다. 푹 꺼진 고개에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아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였다가 하늘을 바라보는 날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생겨났다.


종례 시간, 알림장에 부모님 사인을 꼭 받아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냅다 손을 들고 ‘부모님 없는 사람은 어떡하나요?’하고 물으면, 선생님은 아! 우리 반에 네가 있었지! 하는 표정으로 ‘그런 사람은 할머니 사인받아오세요.’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 말고도 다른 사람의 사인을 받아 가면 되는 거구나.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알림장에 숙제를 체크하고 부모 확인란에 사인하라며 글씨를 모르는 할머니께 연필을 내밀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그 자리에 조심스럽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부모 확인란’에 꼭 부모님 사인이 아니더라도 할머니, 고모, 삼촌의 사인이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있는 아이들도 비 오는 날 신발주머니를 머리에 이고 가는 건 마찬가지였고 나 역시 해가 지고 난 놀이터에 밥 먹으라며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있었다. 주는 이가 달랐지만 사랑받는 방식은 똑같았다. 그래서 애써 감출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부모 확인란’에 꼭 부모가 사인해야 하는 것처럼 세상엔 ‘사랑도 부모에게서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엇을 주던 보내는 이는 무조건 부모여야 했다. 그래야 씻지 않아도 좋은 향기가 나고 수건은 한 번에 두 장씩 써도 되는 아이가 되는 것이었다.


‘부모 확인란’은 ‘보호자 확인란’이 아니라는 걸, 그 사실을 알아가면서 내 속에 비밀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남에게 불쌍해 보이고 싶지도, 하찮게 여겨지고 싶지 않았던 나는, 내 안에 문 하나를 덜컥 잠가 버렸다. 그 안에 부모 없는 아이라는 사실을 넣어 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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