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메리카

by 여름


며칠 뒤, 나는 다시 할머니 댁에 맡겨졌다. 두 번째 방문에 집이 익숙해서였는지 할머니가 입에 넣어준 사탕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날은 엄마에게 매달리지도, 울지도 않았다. 원래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인 것처럼 나는 현관문을 나서는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것이 마지막 인사인지도 모르고. 나는 엄마를 영영 보지 못할 것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엄마와 헤어졌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찾았다. 열 개 손가락을 다 써 날을 세어도 엄마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늦은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잠에 빠져드는 할머니를 향해 늘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할머니, 엄마는 언제 와?”


할머니의 대답은 어느 날엔 열 밤 이후였다가 또 언제는 내일이었고, 또 어떤 날은 그냥 빨리 자라고 화를 냈다. 나는 늘 바뀌는 대답에 짜증을 내며 이불을 걷어차고 울었다. 내가 울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이웃 사람들이 다 깰까 봐 나를 업고 거실을 제자리걸음으로 걸었다. 할머니 등에 귀를 대고 기대면 내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와 가사가 뭉개지던 할머니의 노래가 들려왔다. 밤에만 켜 놓던 빨간 꼬마전구가 어두운 거실을 붉게 물들였다.


그리움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나는 그 빨갛던 꼬마전구의 불빛이 떠오른다. 엄마, 나는 지금 여기에 있어. 이 불빛을 보고 엄마가 날 찾아오지 않을까? 어쩌면 밤마다 할머니가 이 불을 켜놓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망망대해에서 등대의 불빛을 따라 길을 찾듯이 이 빨간 불빛을 따라 엄마가 날 찾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굳게 닫힌 저 현관문이 지금이라도 벌컥 열리며 엄마가 나타날 것 같았다. 어쩌면 우는 모습으로, 아니면 웃으면서. 날 이곳에 두고 가야만 했던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을 말 대신 온몸으로 이야기하면서.


감기는 눈꺼풀 위로 쏟아지는 빨간 불빛을 엄마의 손길 삼아 잠이 드는 밤이 하루, 한 달, 두 달이 넘어갈 때쯤, 나는 정말 엄마가 미국에 갔다고 믿었던 것 같다. 동네 아이들의 ‘수현이 엄마 아빠는 어디 갔냐’라는 악의 없는 질문에 할머니는 ‘수현이 엄마 아빠는 미국에 갔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이들의 입에서 우와- 하고 탄성이 나왔다. 그중 누구도 미국이 얼마나 먼 곳인지, 지구 어디에 붙어있는지, 그곳에 가려면 얼마의 돈과 시간이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그저 TV에 나오는 노랑머리의 파란 눈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미지의 나라일 뿐이었다.


“그럼 너도 미국 가?”


친구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파란 머리 외국인을 마주한 나를 떠올렸다. 상상 속의 나는 외국인과‘안녕’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나눴다. TV에 나오는 외화 시리즈가 한국어 더빙 인지도 모른 채, 할머니와 나는 외국인이 한국말을 잘 배웠네-라고만 생각했다. 외국인들은 모두 한국말을 할 줄 안다고 믿었던 6살의 나에겐 미국에 가는 건 큰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엄마까지 있으니 더 신나는 일이었다.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엄마. 낯선 미국 땅에서 열심히 일하는 엄마. 미국에서 돈을 벌어 나를 찾아올 엄마를 떠올리면 불안했던 마음에 안도감이 찾아왔다. 나는 다시 밤마다 미국에 갈 날을 손가락 세며 잠들었다. 엄지가 잠들고, 다음날엔 검지가 함께 잠들고.., 그다음 날엔 중지가 잠드는 날이 열 번. 꼬박 열 손가락이 다 접히고 외화 시리즈가 한국어 더빙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무렵, 미국이란 나라에 가려면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이 드는지, 지구 어디에 붙어있는지, 미국의 현재 대통령이 누구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쯤 밤마다 켜 두었던 거실에 빨간 전구도 더는 켜지 않게 되었다. 엄마를 향한 기다림도 전구의 빨간 불빛과 함께 꺼졌다.


가끔은 드라마 속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때가 있다. 할머니와 안방에 누워 옛 영화를 보다 여주인공이 자신의 아이를 보육원에 두고 나오는 장면을 보았다.


“엄마 몇 밤만 자고 올게. 미국에서 돈 많이 벌면 너 꼭 다시 데리러 올 거야. 약속해.”


TV 속 아역은 엄마의 다리를 붙잡고 울고 나는 그 대사에 깔깔 웃었다. 저놈의 미국. 저놈의 아메리카. 세상 어딘가, 아이와 잘 헤어지는 지침서에 도피처 예시로 미국이란 나라가 쓰여있는 걸까.


“할머니도 나한테 저렇게 말했잖아.”


내가 웃으며 할머니를 돌아봤지만, 할머니는 낮잠에 빠진 지 오래였다. TV에서 흘러나오는 배우들의 절절한 울음소리와 할머니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나는 가만히 할머니를 안고 할머니의 등을 토닥였다. 그 많던 밤 나 때문에 못 주무신 잠 달게 주무시라고. 나는 이제 울지 않고 할머니는 그제야 편하게 잠을 주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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