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떡볶이

by 여름


할머니 집으로 온 이후, 나의 첫 번째 친구가 되었던 은지. 우리 집 상황을 다 알고 있던 은지는 내가 집에 초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은지는 우리 집 바로 앞 빌라 1층에 살았다. 2층이었던 우리 집 거실 창문을 열고 친구네 집을 바라보면 은지의 방이 훤히 보였다. 늘 할 말이 있으면 우린 전화 대신 창문을 열고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창문에 매달려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엔 둘이 손을 잡고 이번엔 꼭 같은 반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장소가 교회가 아닌 달마도가 걸려있는 우리 집 거실이어서였는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었다. 그래도 우린 반만 달랐을 뿐, 매일 동네를 뛰고 TV를 보고 게임을 하며 지냈다.


어느 날 은지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웬일로 아주머니께서 집에 계셨다. 은지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고 계셔서 집엔 늘 언니나 동생이 있을 뿐, 아주머니가 계신 적은 거의 없었다.

“엄마 쫄면 먹고 싶어.”

막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던 은지가 싱크대 앞에 선 아주머니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갑자기 뭔 쫄면..”

아주머니는 슬쩍 은지를 바라보시곤 싱크대 문을 열어 각종 고추장과 간장을 꺼내셨다. 나는 퉁명스러웠던 대답과는 다르게 분주하게 음식을 만드시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식탁에 앉아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쫄면 장을 식탁으로 가져와 검지로 꼭 찍어 맛을 보시곤 설탕을 조금 더, 마늘을 조금 더 넣으시더니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의 혀끝과 손에 탈탈 털리는 설탕을 번갈아 바라보다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아주머니가 만들어주신 쫄면은 우리가 먹기에 조금 매웠다. 물로 배를 채워가며 먹다, 결국엔 절반도 다 먹지 못한 채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딸의 주문에 음식을 뚝딱 만들어 내던 은지네 엄마. 연신 물을 마셔대면서도 맛있다며 엄마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던 내 친구. 눈앞에 펼쳐진 생소한 광경에 조용히 쫄면만 먹는 나.


일반적인 모녀들이 만들어 내는 식탁의 모습은 이렇겠구나, 생각하며 자연스레 오늘 아침 우리 집 식탁이 떠올랐다. 입이 짧은 탓에 뭘 먹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이야기한다고 한들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할머니도 아니었다. 할머니는 요즘 아이들이 어떤 반찬을 좋아하고 달걀 하나로 프라이 외에 다양한 요리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아는 요즘 엄마가 아니었다. 그저 고춧가루나 간장으로 절인 장아찌나 몸에 좋다는 이름 모를 나물로 만들어진 반찬, 바싹 튀긴 생선들이 식탁 위로 올라올 뿐이었다. 가끔 내가 반찬 투정할 때면 할머니는 백숙을 만들어주시곤 했는데 그마저도 너무 할머니스러운 음식이라 나는 먹기도 전에 한숨을 쉬곤 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을 뚝딱 만들어주는 애정 어린 누군가가 있다는 것. 부러움으로 가득 찬 식탁을 마주한 뒤 어느 날엔가 할머니께 대뜸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졸랐다. 내 의지를 꺾기 위해 떡이 없다는 할머니의 말에 나는 단숨에 몸을 일으켜 마트에서 떡을 사 왔다. 할머니는 하는 수 없이 주방에서 떡볶이를 만드셨다. 안방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있는 내게 할머니의 애정이 공기를 타고 조금씩 내 곁으로 다가왔다. 달큼한 냄새와 도마 위에 칼질 소리로.


할머니가 만든 떡볶이는 한눈에 봐도 고추장이 적게 들어가 고춧가루만 살짝 뿌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어딘가 모르게 촌티 나는 떡볶이였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그게 달든 짜든 싱겁든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막 젓가락으로 떡을 들었을 때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건 고춧가루가 아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투명한 알갱이였다. 냄비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떡과 고추장 그리고 투명한 알갱이가 양념의 일부처럼 섞여 있었다. 알갱이의 실체를 알 수 없어 주방을 둘러보던 내 눈에 찢긴 방습제 봉투가 보였다.

“할머니.. 여기에 이거 넣었어?”

봉투를 들어 보이며 묻는 나의 물음에 할머니는 나보다 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떡과 함께 들어있는 게 양념이 아닌 방습제였다는 걸 할머니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라면처럼 그저 양념이 함께 들어있는 줄 알았던 할머니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방습제를 떡볶이에 쏟아부었던 것이다. 빨간색으로 강조된 ‘먹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은 글씨를 모르는 할머니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이고야.. 먹으면 큰일 날 뻔했다. 아까워 어쩌냐..이걸..”


냄비 속을 들여다보다 괜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다시 해줘?’라고 묻는 할머니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옷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았다. 먹을 순 없어도 버리기가 싫었던 떡볶이. 나는 할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준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는 모습을. 맛이 있든 없든 언제고 나는 사랑받을 준비가 되어있음을. 그게 할머니스럽고 촌스러운 음식이더라도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맛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난 할머니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 속상한 마음에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눈물이 형광등 빛을 받아 유난히 투명하게 빛나던 방습제 알갱이들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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