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이라는 재회

by 여름

막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을까. 나는 교복도 벗지 않고 안방 바닥에 엎드려 TV를 보다가 무슨 생각이 나기라도 했는지 이불을 꿰고 있는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 엄마 소식 알아?”


내 물음에 할머니는 아무런 동요 없이 손에 쥔 바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결혼했지 뭐.. 쌍둥이 낳았다고 그러던데. 아들 쌍둥이라나.”


할머니는 마치 어제 본 드라마 속 이야기를 전하듯 덤덤하게 말했고, 나 역시 드라마 줄거리를 듣는 사람처럼 ‘아~’하는 짧은 탄식을 내놓았다. 그리곤 ‘그렇구나’하고 대답 후 다시 TV에 시선을 옮겼다. 그래. 설마 자기 혼자 살겠다고 자식과 헤어지는 엄마가 어디에 있을까. 헤어짐에도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 엄마의 재혼이 당연하다 생각했기에 놀랍다거나 서운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저 엄마는 어떤 사람과 결혼했을까 하는 궁금증과 이복동생의 존재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건 줄 알았는데 이 세상 어딘가에 배다른 동생이 존재한다는 게 조금 신기할 뿐이었다.


드라마에서 헤어진 연인이 재회하는 장면을 보게 될 때면 나는 엄마와 만나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그동안 못 준 사랑을 돈으로 갚겠다며 날 대기업 후계자로 만들어주는 부자가 된 엄마. 너도 자식이니, 엄마의 빚을 함께 탕감해야 한다고 빚을 지고 사망한 엄마 대신 나를 찾아와 소리 지르는 배다른 동생들. 또 어떤 날은 간이며 콩팥을 이식해 달라고 하는 아픈 엄마 앞에 넋을 놓고 앉은 내가 있었다. 그런 상상 속 나는 양손에 쇼핑백을 가득 들고 백화점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배다른 동생들에게 그 돈을 내가 왜 갚아야 하냐며 울고불고 소리 지르기도 했으며, 이식이 필요한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나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엄마를 만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자신을 고아원에 두고 떠났던 아픈 엄마와 재회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 장면을 보며 소매 끝에 눈물을 닦아내면서도 나는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나라면 어떨까. 이제 누구의 보호나 양육이 필요 없는 어른이 된 나와 앞으로 늙을 일밖에 남지 않은 엄마. 그런 엄마가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까. 아니면 더없이 무거운 짐이 될까. 드라마 속 주인공은 아픈 엄마를 보며 보고 싶었다고 우는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걸까.


어른들은 천륜이란 말을 많이 했다. 언젠가 다시 엄마를 만날 것처럼 ‘나중에 네가 엄마를 만나면...’이라는 말들을 하곤 했었는데, 나는 사실 엄마를 만나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보다도 천륜을 먼저 저버린 것은 엄마인데 내가 엄마를 찾는 게 맞는 걸까? 단지 엄마라서. 그냥 엄마라는 이유로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길을 걷다 우연히라도 마주친다고 해도 우린 서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먼 시간을 달려왔는데 그 낯선 얼굴을 마주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역시 아무리 상상해봐도 내 마음에 깃발을 꽂는 건 반가움보다는 어색함이었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엄마를 만날 뻔한 일이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무심코 전화를 받았는데, 상대는 같이 살았던 막내 이모였다. 보고 싶거나 그립다는 감정보다 ‘진짜 이모가 맞는 걸까’하는 의심과 함께 어색하게 전화기 선만 만지작거리며 ‘네.. 네..’하고 대답만 했다. 학교는 어떤지 생활은 어찌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모와 전화하는 게 할머니를 배신하는 것 같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몇 번 이모의 전화를 받던 무렵에 막내 고모가 진지한 얼굴로 내 앞에 앉았다. 고모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앞으로 엄마와 살고 싶은지, 지금처럼 할머니와 살고 싶은지 이야기하라고 했다. 전에 없던 무거운 분위기에 겁이 나서 눈물부터 쏟아져 나왔다. 엄마가 그립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겨우 익숙해진 생활이 다시 바뀐다는 게 두렵기도 했고 불편한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 나는 할머니와 살겠다며 고모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 후, 이모의 전화를 다시 받을 수 없었다.


그때 내가 엄마에게 돌아갔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어째서 그 큰 결정을 고작 초등학생에게 떠넘겼는지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 대신 누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를 향한 공허한 감정의 시작이 그때 전화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2년이나 지난 상황에서 나를 다시 찾는 걸 보면 엄마도 나를 그리워했구나 하는, 이모를 통해 전달받은 작은 위로. 할머니가 잘해주는지, 밥은 잘 먹는지, 친구와 잘 지내는지 이것저것 묻는 말 중간중간에 ‘수현아.. 수현아.’하며 내 이름을 부르며 안타까워하던 이모의 목소리에 찔끔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나를 눈물 나게 했던 이모의 전화가 미움이나 섭섭함 같은 감정들을 토닥여 마음 깊은 곳에 잠들게 한 건 아닐까. 언제고 잠에서 깨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날이 오더라도 어른들이 말하는 천륜의 만남은 이모가 수화기 너머로 전달해 준 엄마의 마음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나를 다시 한번 달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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