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을 믿고 투고를 시작하다
내가 운세를 보기 시작한 건 경아의 영향이 컸다. 그녀는 몇 년 전부터 운세나 타로 같은 걸 자주 봤다. 년 초엔 거금을 써서 1년 전 예약해 놓은 유명 철학관을 찾아가기도 하고, 취미로 타로를 배워 가끔 친구들의 운세를 봐주기도 했다. 월말엔 무료 운세로 다음 달 운세를 확인하며 행운의 아이템을 착용하거나, 행운의 장소에 꼭 찾아갔다. 경아의 카카오톡 프로필이 바다 사진으로 바뀌어 있으면 친구들을 ‘이달의 행운의 장소는 바다인가’하며 놀렸고, 경아는 ‘어떻게 알았냐며’ 천연덕스럽게 굴었다. 그녀가 이사 축하 선물로 내게 해바라기 그림을 선물했을 때, 나는 ‘정말 경아다운 선물이다’ 하며 한참 웃었다. 경아는 다음 달 운세 내용에 따라 그 일이 진짜 일어난 것처럼 즐거워했다가, 실망했다가 했다. 나는 살아보지도 않은 미래를 다 경험해 본 것처럼 구는 그녀를 자주 놀렸다. 경아야! 너는 미신에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거야! 하면서.
“그냥 그런 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그녀에게 이 말을 한 사람은 나 말고도 여럿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아의 집에 놀러 간 이후부터 더는 그녀를 놀릴 수 없었다. 현관에 앙증맞게 매달려있던 나무로 된 액막이 명태와 모던한 거실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북쪽에 걸린 구어도에 입을 꾹 다물었다. 아, 얘는 미신에 진심이구나. 그동안 그녀에게 점집 호구 1순위라는 둥, 만두피 귀때기라며 놀렸던 기억이 스쳤다. 그제야 경아가 상처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 그녀가 전해주는 미신 (이번 달 행운의 숫자라던가 개운법 같은 것)을 열심히 들었고, 몇 개는 직접 실천하기도 했다. 베란다에 소주를 가져다 놓는다거나, 이달의 색인 검정 옷을 입고서 사진을 찍어 경아에게 보냈다. 경아는 매우 흡족해하며 ‘우리 잘 살자!’ 했다.
경아가 단체 채팅방에 가장 많이 공유하는 것은 무료 운세 사이트였다. ‘야, 이거 잘 맞는 듯!’ 하며 URL을 보내주곤 하는데, 나는 한편으론 ‘아, 또 야?’하면서도 어느새 정독하고 있었다.
‘연못의 물고기가 바다를 만난 격이로구나! 내 무대가 넓어지고 명예가 높아진다. 마른 나무에 드디어 열매가 맺히는구나. 오래 노력해 온 일이 결실을 맺고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격으로....’
나는 운세 비유법에 감탄하며 호쾌하게 웃었다. 머릿속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드넓은 바다를 향해 꼬리를 흔들며 나아가는 그림이 그려졌다. 운세를 본 달은 10월이었는데, 10월부터 11월, 12월 모두 운이 좋았다. 미신 따위 어쩌고 하던 나는 이 운세를 철석같이 믿고 싶었다. 아니, 어느새 믿고 있었다.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과 안방에 누워 각자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번뜩 오전에 본 운세가 떠올라 호들갑스럽게 남편의 어깨를 두드렸다.
“여보, 여보. 나 이거 운세 좀 봐 봐. 경아가 보내준 건데 대박 잘 맞아.”
남편은 내가 내민 핸드폰을 받아들곤 심드렁한 얼굴로 텍스트를 읽어나갔다.
“... 명예가 높아지고... 재물이 쌓이는.... 오 좋다.”
짧은 감상평을 끝내고 보던 스포츠 뉴스에 눈을 돌렸다.
“나 하반기에 뭐 좋은 일이 있으려나?”
“그러게. 로또 사봐 로또. 자기 당첨되는 거 아니야?”
“그런가? 로또 사볼까?”
흡족한 얼굴로 핸드폰 화면을 껐다. 때마침 건조기에서 건조를 마쳤다는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남편과 가위바위보에서 진 나는 별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건조기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콧노래까지 부르며 마른 세탁물을 꺼내던 내 손이 점차 느려졌다.
로또. 로또라. 나의 명예와 영광은 결국 로또 1등이 되는 건가. 로또 1등만큼 큰 영광과 복이 어디 있겠냐 만은, 그것을 만나기 위해 물고기는 거친 물줄기를 헤엄쳐 바다로 나아갔던 걸까. 하지만 로또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일로? 승진이나 이직이 전혀 없는 집에서 일하는 주부에게 명예가 높아지고 인기가 많아진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연말 보너스는커녕 월급도 없는 내게 재물운이 들어왔다는 건 ‘너는 로또나 사라!’ 하는 뜻이란 말인가. 로또 사라는 말을 무슨 그런 멋진 비유법을 써가며 한단 말인가!
나는 세탁물이 든 바구니를 안방으로 가져와 남편 얼굴 위로 뒤집었다. 방금 건조기에서 나온 뜨끈한 세탁물이 와르르 남편에게 떨어졌다. “에잇, 뭐야~” 남편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전에도 이런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첫아이를 낳은 지 1년이 되었을 무렵, 남편은 이직을 앞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철학관에 해답을 찾으러 나섰다. ‘무슨 그런 결정을 사주에서 찾아?’ 나는 그 말을 목구멍으로 겨우 삼켰다. 나 역시 해답이라고 해줄 말이 없었으니까. 그저 현관문을 나서는 남편의 등 뒤에서 ‘잘 듣고 와’ 하는 인사를 하는 게 전부였다. 남편은 나는 물론 시부모님, 시누이, 거기다 첫아이의 사주까지 (일명 가족 운세)를 본 뒤, 뭐라고 쓰여 있는 것인지 전혀 읽을 수 없는 종이 4장을 가져왔다. 애 사주가 어떻고, 부모님 건강은 뭘 유의하고.. 옆에서 한참 떠드는 남편의 말을 건성으로 듣다가 내 귀가 활짝 열린 건 내 운세 부분에서였다.
“자기가 올해랑 내년이 대운이라던데? 운이 엄청 좋데.”
좋은 말이니까, 그래? 하고 반색하긴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운도 타이밍이라더니, 아무리 운이 좋아도 뭐 하나. 육아하고 있는 지금 대운이 다 무슨 소용이라고. 나는 좋은 말에도 금방 김이 빠져 긴 한숨을 뱉었다. 방에서 아기가 ‘으앙’ 하고 울었다.
그래. 그때도 그랬는데. 내 운을 누구에게 빼앗긴 사람처럼 입이 삐쭉 나왔다. 이렇게 좋은 운을 저번처럼 그냥 보낼 수 없지. 나는 바닥에 흩어진 세탁물을 남편 앞으로 밀어놓고 컴퓨터 앞에 앉아 전원을 켰다. 뭘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일단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할 것 같았다. 방에서 빨래를 개던 남편이 갑자기 뭘 하느냐고 소리쳤다.
“나도 몰라!”
뭔진 모르지만, 왠지 지금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 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 이후, 그동안 써 놓은 글들을 하나씩 한 파일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없는 오전 시간과 가족이 잠이 든 늦은 밤엔 글을 쓰거나 써 놓은 글들을 퇴고했다.
“뭘 그렇게 해?”
늦은 새벽, 화장실에 가려고 깬 남편이 불빛에 인상을 찡그린 채 다가와 물었다.
“그냥 뭐 좀 쓴다고.”
나는 모니터에 시선을 둔 채 키보드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 일찍 자.”
남편은 한참 곁에 서서 모니터를 보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대답이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 글만 쓰다 보니 집안 꼴은 엉망이 되어갔다. 나는 아이들이 등원할 때 노트북 가방을 메고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집에서 글을 쓰려고 하면 자꾸 모니터 옆으로 시선이 새 나갔다. 아이들이 아무렇게 벗어두고 간 잠옷, 빵 부스러기가 그대로 떨어진 식탁 밑, 반쪽짜리 식빵이 올려진 접시들, 쌓인 빨래와 그릇들, 며칠 전부터 해야지 벼르고 있던 화장실 청소.. 글을 쓰려 해도 자꾸 이런 것들이 보여 진득하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세탁기만 돌리고 하자, 청소기만 돌리고 하자, 화장실에 락스만 뿌려두고 하자, 그러다 시계를 보면 아이들이 올 시간이었다. 그래서 ‘아예 보지 말자!’ 하는 심정으로 둘째를 유치원에 바래다주고 바로 집 근처 카페에 갔다.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이 많아서 처음엔 깜짝 놀랐다. 다들 노트북을 하나씩 앞에 두고 거북목을 한 자세였다. 나도 한 마리의 거북이가 되어 노트북을 두드렸다.
처음부터 근사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 해봐야지’ 했던 일을 ‘지금 해보자’ 하는 마음뿐이었달까. 매일 내일로 미루기만 했던 출판사 투고를 그렇게 시작했다. 원고지 400매 분량은 한 권의 책으로 나오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지만 계속 끌어안고 있을 수도 없었다. 운세 때문에 ‘올 하반기가 절호의 기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름의 투고 기획서를 작성하고 우리 집 책장에 꽂혀있는 책의 판권 지를 확인해 출판사 목록을 만들었다. 스무 곳 정도의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보내고 나서 뭐가 좀 부족한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전송 버튼을 누른 후라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되돌린다고 해도 뭐가 부족한 건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나의 운발에 바통터치를 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메일을 보내고 몇 주 동안 몇몇 출판사에서 회신이 왔다.
‘보내 주신 소중한 원고를 검토하였으나, 저희의 출간 방향과 달라....’
‘선생님의 원고를 검토해 보았으나 작품이 지닌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저희 출판사에서는...’
전부 거절 메일이었다. 정말 ‘예의 바른 거절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몸소 느끼며 마음으로 꾸벅 인사했다.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그러면서 가끔 하반기 운세를 다시금 확인했다. 물고기가 아직 연못을 벗어나지 못했나? 했다가, 나중엔 네가 좋다며! 하면서 멱살을 움켜잡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일 한 통이 왔다. ‘Re:’가 달린 메일 도착 알림이 뜨면 들뜬 마음으로 바로 확인하곤 했는데, 매번 거절 메일을 받다 보니 마음도 시큰둥해져서 오후 늦게야 메일함을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00출판사 편집장 000입니다. 저희 출판사에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고가 전체적으로 안정적이고 작가만의 목소리도 있는 데다가.. 와닿는 부분이 있어서 선생님을 뵙고 싶은데요....’
헉. 너무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투고 메일을 보내 놓곤 진짜 만나자는 메일이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사람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투고를 준비하고 있다는 걸 몰랐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출판사에서 연락 왔어!”
이상하리만치 집 한가운데에 망망대해 바다가 펼쳐진 기분이었다.
10월이 끝나는 무렵에 편집장님과 미팅을 했다. 행운의 색이라는 검정 목폴라를 입고 나갔다. 왠지 면접을 보러 가는 것 같아서 심장이 계속 쿵쾅거렸는데, 다행히 출판사와 미팅은 말 그대로 ‘미팅’ 같은 분위기였다. 출판사는 작가에 대해, 작가는 출판사에 대해 궁금한 점을 조심스레 물어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글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쓰고 나서 기분은 어떤지, 어떤 방향으로 출판을 하고 싶은지, 글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어떤 점이 흥미로웠는지 등등,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다.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편집장님이 선물로 준 여러 권의 책과 카페에서 사주신 빵으로 팔이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뿐했다.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 말이 확답이 아니었음에도 어떤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내 운을 내가 도로 손에 쥔 기분. 평일 한낮의 지하철은 앉을 자리는 없었지만, 분위기는 여유로웠다. 합정에서 신도림 구간을 지나오며 지하철 창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지하철 문에 기대어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한강을 바라보았다. 윤슬이 반짝이는 한강 표면을 보며 문득 나의 물고기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계속 쓰세요.’ ‘많이 쓰세요.’ 내가 뭔가를 쓸 때마다 내 등을 계속 밀어주던 말들이 떠올랐다. 내가 계속 헤엄칠 수 있도록 바다 쪽으로 물질을 해주던 사람들. 자꾸 뒤로 멈칫거리던 나를 네가 가야 할 곳은 저곳이라며 머나먼 바다를 가리키던 사람들. 앞으로 내 운세을 알순 없지만, 아마 이렇게 쓰여있으리라, 짐작해 보았다.
‘내가 가는 곳마다 힘을 불어 넣어주는 귀인들이 지천에 있구나. 나에게 약이 되는 쓴 말과 힘을 주는 단 말을 해주는 이들이 있으니, 나 또한 그들에게 귀인이 될 운명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