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중립적이라는 착시현상

과학기술에 대한 흔한 착각

과학기술의 중립성 논의

일반적으로 과학이 자연 세계에 대한 진리나 보편적인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다면, 기술은 과학적 지식을 활용해 인간의 삶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이다. 과학기술은 과학과 기술의 합성어로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과학이론과 그 발전이 필요하고, 기술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과학지식이 필요하니 이 어찌 각각 따로따로만 쓰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기술은 본질적으로 동일하지 않고, 역사적으로 사회적 지위에 차이가 었다고 한다.


과학과 기술을 구분하는 사람들은, 과학은 현상을 체계화하고 분석해 그에 대한 설명을 이론화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에게는 실제적 효용이나 일반 대중의 반응보다 동료학자들의 인정이 중요했다. 이와 달리 기술은 일관성이나 합리성의 기준으로 기술 발전을 체계화하는 것 보다는 경제적 가치에 무게를 두는 것이라고 한다. 술은 과학에 기반하면서도 람과 사회에 유익한 무엇인가를 준다기에 더 좋아보이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오늘날은 더더욱 과학과 기술의 관계를 일률적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래도 이 가지 개념을 몇 가지 특징으로 구분하고 연결지어 생각해본다.

첫째, 과학이론을 제품이나 공정에 응용하는 '융합 관계'이다. 둘째, 과학과 기술은 약한 정도의 시차를 두고 상호작용하는 '연결 관계'에 있다. 셋째, 기술이 과학과 분리돼 독자성·독립성을 유지하는 '분리 관계'에 있다.

사실상 20세기에 와서 양자는 국방, 의료, 우주개발, 컴퓨터,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통합돼가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오늘날 과학기술이 자연을 포함한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전보다 커졌으며, 우리 헌법 제127조는 과학기술 조항을 통하여 ‘과학기술’이 국민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사정들만 보더라도, 아무래도 과학에 기반한 기술의 효용은 우리 사회에 국가가 나설 만큼 중요한 가치가 된 것 같다.


현대로 들어와 더 이상 과학자-이용자의 관계는 독립적이지 않게 되었다. 유명한 Alfred Nobel(1833~1896)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니트로글리세린을 보다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였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다이너마이트의 시초가 그와 같은 목적인 것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이너마이트는 본래 그의 개발 의도와 달리, 전쟁 무기로 사용되었고 인간을 죽이는 무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원자폭탄을 제조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맨해튼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도 결국 많은 사람들을 파멸로 이끌었다.

이것들은 과학의 업적인가 아니면 과학연구의 불명예일까? 이처럼 과학기술은 연구자의 의도와 다른 곳에 쓰일 수 있고, 인간의 생명이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보편적인 수준에서 그것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제 과학기술은 그것이 어떤 사회적 결과를 만들었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될 수 있어야 하겠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도 세계는 탈 냉전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상황에서 과학자나 기술자의 자율성이나 독자성이 지켜지리라는 것까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어쩌면 과학기술의 중립성은 환상에 가까운 게 아닐까?


인공지능의 통제권은 인간 의사결정자가 아닌 인공지능의 제조자, 운영자에게 있다. 그래서 그 통제자들이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중립적이다’라고 할 때 안심하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인류와 과학기술의 조화

참고문헌

제임스 매클렐란 3세·해럴드 도른(전대호 옮김),「과학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모티브(2006), 545-560.

김환석,「과학사회학의 쟁점들」, 문학과지성사(200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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